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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두 개의 문’, 낯설고 익숙한
  • 2017. 5. 10수~ 6. 16금
  • 이원경李嫄景

1.

낮에는 자연 채광으로 밤에는 인공조명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인 펄은 화이트큐브가 아니어서 전시를 위해 작가의 공간적 해석이 전제될 수밖에 없는 장단점이 있다. 이원경은 이번전시를 위해 몇 번의 방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거칠지만 한편으로 정돈된 전시 공간의 양면성을 작품과 감상이 공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지점을 찾아 낯설고 익숙한 ‘두 개의 문’을 열어 놓았다.

이번 전시 ‘두개의 문’은 낯설고 익숙한 모습, 공간을 부유하는 인체형상을 중심으로 설치가 되었다. 이 인체형상은 ‘양복을 입은 익명의 중년 남성’의 모습으로 마치 떠 있거나 혹은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 공간 속에 부유하는 ‘낯설고 익숙한’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두개의 문’은 보는 방향에 따라 양각이었다가 공간을 옮겨서 보게 되면 음각이 된다. 음각의 공간은 시선과 빛의 방향 그리고 높이에 따라 인체형상이 왜곡되어 보인다. 이 두 개의 문, 양각의 몸 혹은 음각의 몸은 물성과 형상,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관계, 그 사이를 걷는 신체의 이미지다. 이 신체이미지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으로의 확장된 공간, 크기와 부피만큼 열린 공간을 점유한다.

 

2.

인간의 ‘신체’는 물질이면서 생명을 담는 그릇이다. 살아있는 신체는 복잡한 유기물의 집합체로 자신과 자신 밖의 세계를 지각하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이다. 무엇보다 복잡한 유기물의 집합체인 인간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를 연결하는 신체에 깃들어 있는 소중한 가치, 그것은 마음(mind)다. 사람과 사람이 상호의존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작가는 마치 껍질을 벗은 신체, 몸의 부재 혹은 텅 빈 몸, 열린 신체이미지로 제시해 놓았다. 이원경이 만들어 놓은 인체형상은 마치 껍질처럼 벗겨진 신체, 신사복을 입은 하얀 형상에 파란 눈이 화룡점정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도 한다. 전시의 주제이자 작품명이기도한 ‘두개의 문’중에서 파랗게 빛나는 두 개의 눈과 마주한다. 나의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지만, 나의 눈을 통해서만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 눈에 대한 두 개의 의미가 곧 두 개의 문은 아닐까. 나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은 거울에 비친 나의 허상이기 때문이다. 나의 눈은 나 이외의 다른 곳, 나의 밖을 향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본다. 그런 나를 보고 만나게 하는 것은 타인을 통해서만이 가능해 진다. 이렇듯 이원경의 ‘두 개의 문’은 신체의 껍질, 그것을 보는 이의 시선, 그 시선을 담고 있는 몸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내가 보는 타자의 몸, 정확히는 껍질이 된 몸의 파란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나를 보는 눈, 신체의 밖이 아닌, 신체의 안, 마음을 보는 눈이 된다.

어쩌면 이원경의 ‘두 개의 문’은 허상을 통해 진상을 보는 통로이다. 내 눈이 보는 나는 타자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보기 위해서는 ‘두 개의 문’이 필요하다. 같지만 다른 두 개의 문은 존재의 이면, 존재를 뒤집어 놓은 듯 음양이 결합된 조각, 나아가 나를 벗어야 너를 보고 완성해 가는 상황적 조각이다. 이 상황적 조각은 껍질을 벗은 몸에 투영되는 타자의 몸 혹은 시선을 통해서만이 완성된다. 자아와 타자가 마주보는 문, 두 개의 문으로 나가고 들어가는 눈길은 음각과 양각의 신체이미지, ‘공’과 ‘색’으로 하나인 둘이다. 그래서 ‘두개의 문’을 가진 하나의 몸은 공간과 작품 그리고 감상이 하나로 만날 때, 무한히 열린 창을 본다.

‘두 개의 문’을 가진 신체형상은 마치 허와 실의 경계에서 서로를 품은 채 깊은 심연의 공간을 부유하는 낯설게 익숙한 상황조각이다. 이 조각은 공간을 침투해 들어오는 시선에 따라 미세한 변신을 한다. 그리고 벽과 바닥에 투영된 신체조각은 그 사이에 들어온 관찰자의 몸과 시선에 따라 서로를 투영할 때, 나에게서 너로 향하는 열린 문이 된다. ‘두 개의 문’은 밤과 낮처럼 내속의 양면성인 동시에 내가 타자를 만나는 시선이다.

3.

이번 전시에서 보여 지는 ‘두 개의 문’은 음각과 양각이라는 이중의 신체가 하나인 둘 혹은 둘인 하나가 다수를 투영하는 공간,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되는 시선을 담고 있다. 이 시선은 단일 시점 속에서 나와 타자의 시선이 결합되어 시・공간적 체험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자 장소일 것이다. 이렇듯 ‘두 개의 문’은 신체 즉 몸에 대한 부재, 부재를 통한 실재의 의미가 낯설고 익숙한 몸, 부유하는 몸으로 나 혹은 너를 만나는 곳이다. 이 정중동의 몸, 그 몸과 마주한 시선은 낯선 이방인, 벽과 바닥에 비친 시선과 겹치며 서로를 담고 심연의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품고 있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몸’, 즉 음각으로 만들어진 인체의 형상 속에서 푸른 눈으로 창을 열어 놓았다. 이 눈은 빛과 공기 그리고 자아와 타자의 시선이 교차하는 시간이자 장소이다. 푸른 눈을 가진 신체는 중력이 사라진 공간, 무중력의 공간을 부유하듯 걷는다. 하얀 구름처럼 허공에 떠있는 가볍지만 무거운 존재감, 그것은 실재와 허상의 경계 속에서 현실과 이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계를 품은 그러나 텅 빈 껍질이다. 그 속에 투영되는 것은 빛과 공기의 흐름을 감각하는 신체, 생생하게 살아있는 몸으로 그것을 보는 시선이다.

몸과 마음의 관계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둘이 서로 만나야만 하나가 된다. ‘두 개의 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통해 신체를 인식하는 상황조각으로 신체와 정신의 이면에 깔린 결핍을 채우는 문이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눈은 부유하는 몸, 낯설게 익숙한 신체로 무한히 열린 공간을 걸으며 안과 밖의 경계를 열어놓는다. “나의 작업은 보는 사람이 동화되어 작품과 하나가되는 것을 만들고 싶다. 그것을 위해 거울을 벽과 바닥에 설치한다. 내가 만든 인체의 이미지와 그것을 보는 사람 모두가 바닥 혹은 벽 그리고 천장까지 서로서로 같은 공간 속에서 투영되는 풍경을 만들고자 한다. 나는 작업을 통해 하나의 공간에서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조각 혹은 세계를 펼쳐 놓고 싶다.”는 작가의 울림은 ‘두 개의 문’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만큼 하나의 눈이 가진 결핍을 보충하고 불완전성의 간극을 매우고자 하는 시도일 것이다.

이 같은 작가의 의도는 ‘두 개의 문’으로 들어가 부재를 통해 서로에게 녹아드는 실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두 개의 문’은 허상을 통해 신체의 불완전성, 결핍을 채우는 상황적 관계의 시각화이다. 그리고 텅 빈 형상에 빛나는 푸른 눈은 완전체를 향해 신체라는 경계 밖으로 난 창이다. 이렇게 신체의 경계선을 뒤집어서 내부를 드러냄으로써 ‘두 개의 문’은 감각의 한계를 넘어 ‘공’의 세계, 즉 색과 공이 하나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문이다.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아트스페이스펄 대표)

  • 'Two doors', Familiar but Unfamiliar
  • 2017. 5. 10 wed ~ 6. 16 fri
  • Wonkyung Lee

1.


As Art Space Purl, which is a place where you can appreciate artworks with artificial lighting at night and sun light during the day, is not a white cube, the artist's proper spatial interpretation is inevitable for the exhibition. With this reason, several times, Wonkyung Lee has visited and interviewed for this exhibition. By finding the point where the artworks and their appreciation interact, as ‘Two Doors’ that is familiar but unfamiliar at the same time, she opens double-sidedness of the exhibition space which is rough but trimmed.


The show, 'Two Doors' is the installation constructed with some familiar but unfamiliar figures of the human body floating in the space. The human figures reflect the 'anonymous middle-aged men in suits' and these 'familiar but unfamiliar’ persons seem to float or walk in the space. The 'Two Doors' shown in this exhibition seems embossed and also engraved according to the directions viewers would face to. In the engraved space, these human figures seem to be distorted depending to the direction of lights, eye levels and viewing directions of the viewers. The ‘Two Doors’, the embossed or engraved bodies, is the images of human body which walk between physical and geometric of body and the relations of visible and invisible. The body images, as much as its size and volume, occupy the open space which is expanded as the invisible through the visible things.

 

2.

Human 'body' is a substance as well as a container for life. A living body is a collection of complicated organisms that are capable of perceiving themselves and outside of the world. Above all, human beings, a collection of complex organic matter, are living in a social network. The mind is the precious value which lies in the body connecting the relationships. Lee installs the human being living through interdependence among persons as a body peeled its shell, a lack of body, an empty body, or an open body image. The shapes of the human body produced by Wonkyung Lee give the impression of the skin-peeled bodies and they are the white figures in suits and blue eyed which can be the ultimate accomplishment.

Eye is also called window of mind. ‘Two Doors’ which is the theme of the show as well as the name of her artworks makes us stare at two blue eyes shining at the 'Two Doors'. Although I cannot see myself with my own eyes, I am able to look the world only through my eyes. Seeing me with my own eyes is my illusion in the mirror. Only after my eyes look outside of myself, they can see me. It is only through other people that I see and meet myself. Likewise, 'Two Doors' by Lee returns as the shells of the body, the gazes of spectator, and the body embracing those gazes. In addition, when I face tot those blue eyes of the figures that only remained their shells, the eyes that watch me become the eyes seeing mind.

Maybe the 'Two Doors' is the way to perceive the truth through the illusion. My body reflected in my eyes can be only watched through the others. So I need ‘Two Doors’ to see myself. ‘Two Doors’, which is the same but different, is the installation of the Yin and Yang combination which seems to have reversed the existence and the circumstantial installation that can be completed only after I take off myself and see you. This circumstantial sculpture is completed only through the body or gaze of others reflected on the peeled body. The door facing self and others and the sight going into and out from the two doors are the engraving and the embossed body images, that are one as well as two in terms of ‘matter’ and ‘emptiness’. When space, artwork, and appreciation meet as one, therefore, one body with 'two doors' sees infinitely open windows.

The body shape with 'Two Doors' is the familiar but unfamiliar circumstantial sculpture floating in a deep abyss, as if embracing each other at the interface between reality and illusion. According to view penetrating the space, this artwork is elaborately transformed. Besides, depending to the bodies and sights of viewers who enter between the reflected body sculptures, the artwork reflected on the wall and floor becomes an open door from me to you. The ‘Two Doors' is, like night and day, double-sidedness of me and, at the same time, the perspective that I meet others.

 

3.

In 'Two Doors', double-sided bodies engraved and embossed have the view expanding into an infinite space where one body that can be two reflects the majority. This gaze would be the time and place that the gazes of others are combined in a single gaze and spatial-temporal experience is realized. In this way, with floating bodies that are unfamiliar but familiar with the meaning of existence through the absence of the body, 'Two Doors' is the place where I meet myself or you. This body of static movement and the gaze facing it contain each other and overlap with the stranger, the wall, and the floor as penetrating into the space of the abyss.

The eyes of mind are invisible. The visible body possesses invisible mind. The artist opens the window as blue eyes of the ‘invisible body’, the engraved figure. These eyes are the time and place where light, air, and gaze of self and others intersect. Like floating, the body with blue eyes walks in a space of zero gravity. Similar to a white cloud flowing in the air, light but heavy presence is an empty shell embracing the relationship of reality and ideal, and visible and invisible in the border of reality and illusion. What is projected in it is a body that senses the flows of light and air and a gaze that sees it as a vividly living body.

The relationship between body and mind does not independently exists. When those two meet, they can be one. 'Two Doors' is the circumstantial sculpture that recognizes the body through the invisible mind and fills the deficiency in the other side of the body and mind. While the eyes as a floating body familiar but unfamiliar walk in the infinitely open space to fill the deficiency, they open the boundary of the in and out sides. "I would like to make the viewers assimilate to my artworks. To do so, I install some mirrors on the walls and floors. I plan to construct a landscape in which both the image of my figures and the viewers watching them are reflected on the floor, wall, and ceiling. I attempt to unfold the world or a sculpture same but different in one space.” As Wonkyung Lee mentioned, her artwork is the experiment to fill the gap of imperfection and to compensate for the lack of the distance between visible and invisible.

The intention of Lee is to become substance that enters into 'Two Doors' and dissolves into each other through the absence. Therefore, the 'Two Doors' is the visualization of the circumstantial relationship that fills the imperfection and deficiency of the body through the illusion. Furthermore, the blue eyes shining from the empty bodies are the window opened toward perfect body and outward from the limits of body. Thus, by overturning boundary, reveling inside out, ‘Two Doors’ is the door of ‘色卽是空空卽是色: Matter is emptiness and emptiness is matter’, which means beyond the limits of the senses, matter and emptiness become one.

 

Text :Okreal Kim, Translate : Yunsook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