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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Daydream, Installation, Mixed media, 2017
  • 이미지와 질료
  • 2017. 11. 22 wed ~ 12. 8 fri
  • artist talk_2017. 11. 22wed, 6pm
  • 서옥순 Oksoon Seo

이미지와 질료

아트스페이스펄에서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중견 여성작가 서옥순의 "이미지와 질료 Image Matérielle" 개인전을 오픈한다. 서옥순은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갔다. 브라운슈바익 미술학교에서 초현실주의적 작업을 하는 유명한 작가 고렐라(arwed gorella)의 클라스에서 3년간 수학을 하였다. 그러나 고렐라 교수의 급작스런 병환으로 새로운 교수를 찾아 나서야만 했던 서옥순은 당시 말레비치의 작품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작가 몽키비취(Lienhard von Monkiewitsch)교수의 클라스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도 교수가 바뀌는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서옥순의 작업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바느질 작업이었다. 서옥순은 “저는 몽키비취 교수님 클라스에 들어가기 위해 6미터 3미터짜리 저고리를 만들었어요. 거기에 제 얼굴을 수놓기 시작했지요. 저고리 위에 동양 여성의 평범한 얼굴을 드로잉 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방에 항상 하얀 캔버스를 걸어놓았어요. 그걸 보면서 영감을 떠올리려고요. 어느 날 아이들을 다 재우고 밤늦도록 수를 놓다가 불현듯 캔버스 위에 얼굴을 수놓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고리를 내려놓고 흰 캔버스에 내 얼굴을 수놓기 시작했지요. 밤새 바늘로 얼굴을 그렸어요. 흰 바탕에 까만 색 실로 드로잉을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다가 아침에 마지막 마무리로 눈동자 작업을 하고 실을 자르기 위해 가위를 찾아 몸을 일으켰는데, 눈동자에 까만 실이 길게 늘어진 것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굳이 실을 자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하얀 캔버스에 까만 실로 그려진 얼굴과 눈동자에서 이렇게 흘러나오는 눈물 같은 실을...” 당시의 감회를 회상하는 미소가 환하다. 아이 셋을 키우는 유학생 엄마의 감각, 단련된 촉감과 기술이 미술로 발하는 시간이자 후회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 호롱불 속에서도 눈보다 예리한 손 감각으로 알록달록한 복주머니를 만들어 주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 할머니와 함께 했던 작가의 깊고 아득한 기억이 피와 살로 촉각과 시각에 각인되어 있었을 터이니 얼마나 그립고 반가운 시간이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고향을 떠나 먼 이국에서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며 생활하기도 힘겨웠을 텐데, 삶과 예술을 오가는 가운데 할머니의 지혜와 손맛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할머니의 예리한 손 감각이 일깨운 작가의 시선은 그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한다. 그리고 그만의 그림을 바늘과 실로 한 땀 한 땀 점을 찍고 선을 그리듯 기억 속의 자신와 현재의 자신을 엮어 그만의 ‘존재’를 찾아가는 시간이었으리라. 그렇게 작가는 그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설치작업으로 다양하게 확장해 오고 있다.

Face, 24x28x42cm, Mixed media, 2017
Anima Animus, 30x30x87cm, Mixed media, 2017
아니마아니무스, 50x55x120cm,
Mixed media,2017
Daydream, 80x67x67cm, Mixed media 2017
Hand, 31x33x19cm, Mixed media, 2017

서옥순의 최근 작업은 평면의 볼륨과 조각적 입체를 보다 다양화하는 시도를 한다. 우선 색의 깊이와 촉각적 질감에 섬세한 그만의 조형방법이 흥미롭다. 이러한 변화들 중에서 2014년 아트스페이스펄 개인전 "존재, 나의 시선"에서는 얼굴의 표정에 볼륨감을 넣어 좀 더 그로테스크한 면을 강조한 자화상을 보여주었다. 김옥렬은 이 자화상을 “자신 속의 나와 자신 밖의 나를 찾아서 연결해 가는 시각적 내러티브(narrative)로 감성과 이성, 형식과 내용이 서로 겹치며, 씨줄과 날줄의 교차 속에서 실존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존재'는 자기라는 주체성을 바탕으로 자신 밖에 있는 타인과 만나 자아가 깨지기도 하고, 새롭게 거듭 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서옥순의 초상 작업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 자신의 안과 자신의 밖에 있는 나를 찾아 하나로 이어주듯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존재'에 잠재된 억압과 상처(trauma)를 꿰매고 치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작가 작업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던 또 다른 배경으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 역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는 달리 아버지와는 매우 대립적인 감성으로 청소년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보다 강한 여성적 이미지로 드러났는데, 그 이미지는 억압으로 상처받은 자아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아를 투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렇듯 과거의 작품이 트라우마에 대한 원인을 찾아 스스로를 치유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면, 2017년 아트스페이스펄 개인전을 위한 신작은 보다 성숙한 자아를 찾아 가는 길에 있다. 작가의 이번 작품에는 부드럽고 깊은 질감과 색의 울림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명상적 분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작가는 우연히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촛불의 미학』을 읽고 촛불의 이미지가 인간 본래의 모습 그 자체로 표현한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스스로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 깊은 어둠일수록 작은 불빛은 더 환하게 존재를 드러낸다. 빛과 그림자라는 양면성, 스스로 빛이 되는 존재란 무엇일까, 타인 속에서 발견하는 나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볼 수 있는 심연 속에서 찾은 작은 빛은 바로 그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녹여내 작품 속에 투영해 나가는 길이 아닐까.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종종 만나면서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자의식을 투영하는 작품을 만난다. 이를 통해 서옥순은 스스로를 반추하면서 그 속에 내재된 아니무스가 아니마인 몸을 보고 감각하는 균형감을 찾고 있음을 본다.

서옥순은 이번 전시 "이미지와 질료"에서 세 가지 타입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그의 작업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하나의 몸에 단단하게 붙어있는 여성과 남성의 이미지이다. 남근 형상의 꼭대기에 커다란 여성의 얼굴이 고정되어 있으며 외부의 자극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만큼 견고해 보인다. 그런 단단함 사이로 검은 나비와 작고 귀여운 얼굴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배꼽부분에서 나온 탯줄 같은 끈은 자신의 입속으로 다시 들어가며 마치 영양을 섭취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면과 소통하는 이성적 자아를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이 작품은 고정되어 있는 신체가 아니라 움직이는 신체이다. 작품의 아래쪽에 바퀴를 달아서 언제 어디든 가야하는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몽상」은 수동적 이미지이다. 커다란 얼굴에 작은 얼굴들이 솟아나 있고 마른 나뭇가지가 움터 있으며 봉합된 상처에는 검은 나비가 앉아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얼굴, 서옥순은 이 작품이 오히려 꿈과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몸에 난 상처는 언젠가 아물 것이고 아픔처럼 기쁨도 늘 옆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픔만큼 성숙해 진다는 것, 존재는 상처를 전재하고 있기에 아픔을 극복하면 더 단단해 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만든 얼굴, 그 자신이자 익명의 현대인이기도 한 하나인 여럿의 얼굴에는 아픔을 녹여낸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하나인 몸이 된다.

또한 캔버스 위에 풍성한 볼륨과 화려한 색으로 작업한 「몽상의 명암」시리즈는 마치 인간 내면의 속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이 살갗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 표면은 상처의 흔적으로 더 단단해진 모습이다. 서옥순의 이번전시 <이미지와 질료>는 촉각적인 시각이 결합되는 경계, 몸 혹은 존재의 안과 밖, 아니마 속에 내재된 아니무스와 아니무스 속에 내재된 아니마의 상처가 서로를 봉합해 놓는다. 그리고 이 균형감은 촘촘하게 한 땀 한 땀 바늘과 실이 지나간 자리는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자 몸이 빛이 되어 그만의 존재감을 발한다. 이렇듯 서옥순의 이번 전시는 억압받고 상처로 얼룩진 자아를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투영한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아픔 뒤에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존재의 상처와 억압을 넘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이미지’와 마주하는 시간이다.(정명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