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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규정되지 않은 모호함
  • 2018.8.8 wed ~ 8.24 fri
  • 홍순환 Sunhoan Hong

1. 올해의 여름은 유난히 덥다. 한겨울보다 한여름의 더위가 그나마 생활하기 낫다고 생각했던 선입견도 벗게 한다. 이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서 전시를 위해 홍순환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미얀마의 여름을 품고 있었다. 우기여서 비가 내리고 흐린 날이 많은 미얀마를 호흡하고 한 달 내내 비 한번 내리지 않고 있는 대구의 더위 속으로 왔다. 얼굴빛에 사원과 불탑의 도시인 바간의 풍경이 깊게 드리워서 인지 검붉은 얼굴은 유난히 붉게 보였다.

홍순환은 늘 뭔가에 깊게 빠진 듯 그만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 놓는다. 무슨 의미인지 잠시 머뭇거리다 던져놓은 질문을 받을라치면 다시 헛헛한 웃음으로 금방 그곳을 빠져 나간다. 그리고 무심한 듯 진지하게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문제의 핵심을 끌어낸다. 홍순환은 그간에 ‘중력’이라는 주제를 통해 특정한 공간에서 사물을 재배치하면서 집요 하리만큼 공・감각적 인식과정에 대한 질문을 해왔다. 그것은 중력에 지배되는 설치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 혹은 서로 다른 관계에서 발생하는 편향된 힘의 원리가 갖는 모순과 부조리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전시는 회화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그 자신이 생각하는 회화,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화두로 ‘구조적 우월함’을 끌어낸다. 이를테면 낯설고 모호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회화가 가진 구조적인 우월함을 덜어 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여기서 홍순환이 말하는 ‘구조적 우월함’이란, 사각이라는 틀에 구체적이고 확고부동한 그 무엇을 보여주는 그림이 가진 한계치에 관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홍순환의 이번 전시는 바로 ‘구조적 우월함’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을 풀어가는 방법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Sunhoan Hong_Untitled_oil on canvas_91×117cm_2014
Sunhoan Hong_Untitled_oil on canvas_95×72cm_2014

2. 홍순환작가가 그려왔던 그림들 역시 ‘구조적 우월함’에 대한 문제를 풀기위한 방법론을 찾기 위한 시도였고 여전히 그 여정에 있다. 그래서 홍작가는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나 문화적 이질감을 흡수하는 유연한 공간, 규정되지 않은 모호함, 굴절되고 휘어지는 시공간의 변화, 물리적 이동을 통해 느끼는 심리적 피로감 혹은 공간적 거리감이 주는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감각이 확고부동한 틀에 갇히는 것을 경계한다.

누구나 한번쯤 공간 이동으로 적응하기 힘든 감정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홍순환은 종종 그러한 기분에 빠진다고 한다. 이를테면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감정상태 같은 것이다. 몸과 마음이 현실에 적응하기 전에 갖게 되는 감정이다. 그 감정은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차이, 그 차이 속에서 규정성 혹은 우월성을 벗어나 확장을 시도한다. 그렇다면 몸이 적응하는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모호함, 적응하기 전에 변해가는 문화적 이질감 혹은 차이 속에서 수많은 레이어가 결합되고 중첩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린다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홍순환의 이번 전시, ‘규정되지 않은 모호함’은 같지만 다른 그 자신의 회화적 결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확장을 시도하는 장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림, 즉 회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스스로 자문을 하고 또 자칫 그림이라는 틀이 가진 ‘구조적 우월함’을 벗어날 때 맛보는 회화의 독립성을 찾아가는 지점에 있다. 그 지점은 창작자가 그림의 배후에서 마주한 시선과의 관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 달리 표현하자면 내가 그린 그림에 다른 사람이 그리기도 하고 또는 다른 사람이 그려 놓은 그림에 나의 생각과 행위를 겹쳐 모호성을 통해 규정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홍작가는 교차와 융합이 이루어지는 회화적 장을 통해 그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지점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화면 속에서 그 어떤 개연성을 갖지 않고 단지 하나의 현상으로 보는 지점이야말로 작품에 담고자 하는 창작의 의도를 분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알게 모르게 조형적 기법이나 선험적 원리에 몰입해 교조적인 회화로 빠지지 않기 위한 그 자신의 방법론이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볼 때 역시,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그 사이에서 당위성이나 의미를 전제하거나 찾는다. 소유할 수 없는 시공간, 존재하는 곳과 그 시간이 곧 나의 삶이 자리한 곳이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관계나 상황들 속에서 겹치고 남는 여운, 오감이 작동하고 그것을 호흡한 시공간 속에서 비로소 나다운 나를 보게 된다. 그 속에서 감각하는 차이는 너 다운 너를 보는 것이다.

Untitled_oil on canvas_117×91cm_2014
Untitled_oil on canvas_127×91cm_2013
Untitled_oil on canvas_143×112cm_2014
Exhibition view
Exhibition view
Exhibition view

3.감각의 차이, 그 차이를 표현하는 예술은 그럴듯한 핍진성이라는 환상 없이도 개인이 경험하는 낯설음과 거리감을 인정하고 그만의 독립성을 가진다. 너의 눈이 본 것과의 개연성속에서만이 내가 본 것이 존재감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스쳐가는 낯선 것에 대한 잔상마저 남기지 않는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새로운 시선만이 독창성을 가진다. 지금의 시대적 감각은 구태의연한 것 너머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이러한 태도는 관성적으로 해 온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 소유가 아닌 독립적 시각 속에서 공유개념으로 확장해 가는 것에 있다.

소유와 공유개념의 차이는 마치 늘 살던 도시에서 12시간을 움직일 때와 12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 했을 때 느끼는 거리감만큼이나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가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괴리감은 감각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다. 온라인 접속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즉각적인 대화가 가능하지만, 그것이 몸으로 감각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로서의 예민한 감수성이 가진 작가적 시선은 그 시선 너머 감각의 장을 통해 개인적인 괴리감을 새롭게 지각한다. 그것은 창작과정에서 행위를 통한 물리적 조건이 구조화되고 개념화되는 것에 대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나는 회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얼마는 작가가 직접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하는 작업으로 고착화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개인의 조형적 의지를 배제하기 위한 시도, 애매해 지더라도 뭔가 다르고 새로운 회화를 시도하는 방식, 확정성을 벗어나 모호성을 갖게 하는 것, 그 속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시도한다. 모호하고 애매할수록 관계 맺기가 쉬워진다. 은연중에 갖고 있는 자기라는 구체화된 형태를 유연하고 열린 방식으로 거듭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홍순환)”

흔적 없는 기억을 예술로 만들어 가는 작가인 티노 세갈(Tino Sehgal)의 몸을 통한 행위예술은 그림이나 조각이 아닌, 노래하고 말하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장소와 사람에 따라 상황적 변화가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소유가 아닌 공유의 방식으로 만들어 놓는다. 세갈의 시도처럼 회화 역시 그 어떤 무엇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일까. 홍순환은 ‘구조적 우월함’을 벗어나 ‘규정되지 않은 모호함’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감각적 독립성의 확보를 시도한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오랜 역사를 품은 바간의 사원과 탑에서 발견한 낙서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이번 아트스페이스펄에서의 전시가 뜨거운 여름을 녹여낸 감각적 괴리감, 그 사이를 보는 작가적 감수성으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옥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