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13 sun ~ 10. 27 sun
홍순환 Hong Sun Hoan
장소 : 아트스페이스펄 >>유-스테이션
아트스페이스펄은 창고형 전시공간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펼쳐 놓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공간을 우리는 U-station으로 이름 붙였다. U는 독특하거나 단일하다는 의미가 있는 unique의 U와 제한을 갖지 않고 자유롭고 넓게 세계를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unlimited의 U를 포함한다. U-station은 기존의 전시공간을 벗어나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site)에서 마치 섬처럼 서 있는 3층짜리 창고건물 3층에 있다. 달서구 월성동 805-1번지에 위치한 이 건물은 1층과 2층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U-station은 3층(200 여평)을 이용해 ‘장소 특정성(site specificity)’에 대한 설치작품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우선, 이 건물이 놓인 장소의 3층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전제는 개인전이나 그룹전이라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어떤 결과나 목표지점도 설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비결정적인 지점의 연속성 속에서 열린 시각과 확장된 의식을 가지고 장소에 대한 작가적 해석을 열어놓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는 우연과 필연 혹은 불연속성과 연속성의 충돌이거나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공간의 변화, 그 변화들 속에 놓인 작가적 의식의 실천 내지는 존재를 구현하기위한 작가와 큐레이터 간의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아파트가 완공되어 입주했거나 거의 완성단계에 있는 아파트 그리고 또 새롭게 지어질 부지로 아파트가 들어설 공사 현장의 한가운데 있는 U-station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 그 관계 속에서 느끼거나 바라보는 작가적 시각이 담겨진다. 지금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U-station은 아파트의 완공 속도에 따라 유동성을 안고 있기에 얼마간의 기간에 어떤 작가들이 참여하게 될지 유보상태에 있다. 그래서 U-project는 도시공간의 흐름 따라 이동하는 ‘유목적 프로젝트(Nomadic project)’이고,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는 결과 보다 ‘과정(process)’을 공유하는 것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U-station의 ‘유목적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가인 홍순환은 이 공간에 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곳의 3층에 있는 U-station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난 불현듯 ‘인식의 한계점’이란 말을 떠올렸다. 이 말은 내가 근래에 봤던 책에서 나타났던 말인데 주변이 구조적으로 복잡해지면 그것과 대응하는 어떤 주체가 그 복잡성을 이기지 못해 자구적인 인식과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봉착한다는 뜻이다. 그 상태의 시점은 스스로를 위한 능동적인 책무를 잃어버린 때이고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정체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인식의 한계점이란 말이 이번 작업의 시작이 됐다.” 그리고 그는 ‘인식의 한계점’을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물을 휘어진 용기에 담아 구획을 나누고 또 개체화했던 설치인 ‘휘어진 물’을 떠 올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진화의 궤적을 벗어난 ‘휘어진 물’과 ‘U-station’의 환경이 갖는 유사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첫 프로젝트에서 제시하는 홍순환의 ‘2300개의 물’은 그가 붙인 설치 제목이 전제하듯이 그는 물을 하나의 단위로 개체화한다. 일반적으로 온도나 밀도 부피나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의 기준이 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은 생명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그래서 물이 없는 곳에는 생명도 없다. 무색, 무취, 무형의 물이지만, 주변의 환경과 물의 양 그리고 물의 깊이에 따라 물은 다양한 형과 색과 향과 맛을 가지기도 한다. 이렇게 물은 하나이기도 여럿이기도 한 수많은 얼굴과 맛을 가진다. 그 물을 홍순환은 ‘2300개’라는 숫자로 표현한다. 어떤 점에서 양이나 수에 대한 측정은 과학이나 수학의 언어인 수치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연속량을 분리량처럼 셀 필요성에 의해 단위(unit)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단위가 갖는 것을 그 중심에 있는 물, 그것도 ‘휘어진 물’ 혹은 ‘2300개의 물’이라는 이름으로 작가의 직관과 장소가 갖는 의미를 나누거나 또 결합해 간다. 이러한 방식에 대한 그의 설명을 인용하자면, “나는 휘어진 물을 전시환경에 맞게 변형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비닐봉지에 물을 담아 바닥에 배열하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은 천정의 굳건하고 위압적인 철재 빔으로 된 보와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설치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정방형의 판이 계획이었다. 그 계획은 월성동의 지도 형태로, 다시 흩어져 있는 섬들의 모양으로 변했다. 이 작업의 제목은 ‘2300개의 물’이다. 즉 분리, 분화, 분절되어 비닐봉지에 갇힌 물들의 총합이 2300개란 뜻이다.” 이렇게 물이 갖는 유동성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은 그가 바라보고 서 있는 자리(site)에 대한 환경에서 그 시간과 공간의 상황적인 문맥으로 개체화한다. 그 개체화의 방식이 흐르는 물,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물, 무색, 무취, 무형의 물을 일회용 비닐봉지에 담아 놓는 방식이다. 물은 동일한 크기의 투명비닐에 일정한 양으로 담겨진다. 그리고 담겨진 물은 한 방울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매듭을 묶는다. 투명비닐에 들어가 갇힌 물은 그 크기와 질감과 부피만큼 변화한다.
홍순환의 개체화가 갖는 의미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역사적으로 ‘개체화 원리’에 대한 철학적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개체화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한정된 것이기에 개체와 개체간의 끝없는 교환을 지향한다. 이러한 교환은 투명비닐에 질료와 형상이 일시적으로 관계 맺는 개체화이기도 하다. 이 일시적이거나 한계 지어진 존재로서의 개체화의 작용에는 개체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생명의 흐름이 단절과 연속이라는 변화를 거친다. 마치 시간과 장소가 연속적이거나 불연속적인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비닐 안의 물과 비닐 밖의 불연속의 관계는 여러 가지의 상황적 변화를 통해 개체와 개체 간에 공유와 교환의 장소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삶의 환경과 흡사하다. 보고 느끼는 시선 따라 일렁이는 마음처럼, 공유와 교환을 매개하는 시선은 상황적 환경 속에서 개체와 개체 혹은 장소와 장소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그 어떤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있다. 홍순환의 ‘2300개의 물’은 순환(circulation)을 매개로 외부와의 새로운 관계형성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그가 제시하는 개체화인 ‘분리, 분화, 분절되어 비닐봉지에 갇힌 물들의 총합, 2300개의 물’이다. 이렇게 홍순환의 장소적 해석은 물을 통한 개체화의 작용으로 그 의미의 지평을 열어 놓는다. 아마도 이점은 환경적 변화에서 발생하는 내적이거나 외적인 관계를 매개하는 시•공간적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적 태도일 것이다.
- 글 김옥렬(현대미술연구소/아트스페이스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