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BETWEEN

2018.3.16 fri ~ 4.15 sun
공병훈Byunghoon Kong, 남채은Chaeeun Nam

아트스페이스펄은 청년작가 공병훈 남채은의 작품을 “Between”이라는 주제로 전시한다. ‘비트윈/사이’는 눈에 보이는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과 대상의 빈공간이다. 그 공간이 좁아지거나 넓어짐에 따라 대상에 대한 태도나 표현 방식도 달라진다. 그러면 공병훈과 남채은, 2인전의 ‘사이’는 무엇일까. 두 작가는 각각 대학 졸업 후 회화작업에 전념하며 활동해 왔다.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자신의 작업세계와 연결짓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탐구하며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생각만큼 작업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변화해 가는 과정에 있으며, 그 ‘사이’, 변화의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결과물/작품이 만들어 진다. 이번에 아트스페이스펄에서 보여주는 BETWEEN도 그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 중 하나이다.

 

공병훈 / 누구를 위한…

공병훈은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고전회화(14~19세기)를 패러디한 작품연작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고전적인 주제의 엄숙한 분위기에 변화를 주기위해 인물과 배경을 대중적 아이콘인 캐릭터나 피규어로 대치하였다. 이 작고 귀여운 인형들은 허구와 상상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러나 고전 명화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가 이런 아이콘으로 인해 갑자기 대중적인 이미지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공병훈은 수많은 레이어들을 중첩시키면서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현대를 풍자 혹은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였으며 또한 배경을 마치 연극 무대처럼 꾸며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극시리즈도 보여주었다.

아날로그적 고전화풍과 디지털의 이미지를 결합해서 재구성한 이시기의 작품에 대해 작가는 오히려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공병훈은 “누구를 위한…”이라는 질문속에서 다시 변화를 위한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에도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만들진 기준이 있다. 그것을 충족하지 않으면 그림을 그려도 발표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자생력은 가능한가. 현실적인 고민은 대학을 졸업하고 작업실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더라도 작가로 진입해 가는 장벽이 있고 또 주어진 기준에 맞추어야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병훈은 자신의 청년기의 창작활동이 타의에 의한 기준으로 창작의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사회현상을 바라보았다. 최근 공병훈은 이러한 문제점 속으로 들어가 산업자본이 만들어 내는 상품의 이미지 혹은 브랜드 가치가 가진 이미지의 상징성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변화는 하나의 정물 혹은 정물의 일부가 마치 X-ray로 촬영한 것처럼 단일한 색으로 정교하게 그려 놓았다는 점이다. 이 정교한 표현에서 발견되는 특이성은 일상의 오브제인 가방이나 시계 그리고 넥타이 등 서로 다른 질감을 투명한 물체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듯이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공병훈은 실제 정물의 형상을 작가적 시간과 테크닉을 통해 투명한 사물로 만들어 놓는 시도를 했다.

그 정교한 형상에 부여한 투명성은 현대 사회의 벽, 훤히 보이지만 명백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작가적 시선이다. 이런 시선은 명암의 대조로 매끈한 볼륨에 무게감을 더하고 있지만, 투명에 가까운 표면은 유리처럼 깨어질 듯하다. 이는 정교한 틀로 지은 명확한 경계,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시스템을 상징한다.

남채은 / 기억의 미화-그로 인해 창조되는 것들

남채은은 기억을 테마로 작업한다. 사실적인 정물화 작업을 주로 했던 작가는 자신이 선호하는 이미지에 하얀 비누거품을 결합하고 있다. 남채은의 비누거품은 견고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라지는 과정을 포착해 사라질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 사이에 대한 생각을 거품으로 그려놓고 있다. 남채은이 그리는 거품은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흔적들 처럼 또렷한 것이 시간에 씻겨사라지는 것에 대한 은유를 거품이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2016년 아트스페이스펄의 영프로 5기에 선정되어 전시되었던 작품 중 ‘안중근’이나 ‘아브라함 링컨’의 초상을 보면 실루엣만 희미하게 남겨진 채 비누거품에 지워지거나 가리워진 듯한 작품으로 전시를 했었다. 이 작가는 그 시기의 작품에 대해 “개인이나 사회적 기억이 시대적인 흐름에 의해 지워지거나 새롭게 덧붙여지게 되는데, 나는 이러한 과정을 비누거품을 통해 시각화한다.”고 하였다. 즉 우리가 아는/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진짜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라 지식에 의해 아는 것 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미화된 정보는 우리의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떤 인물이나 풍경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최근 작가는 ‘기억의 미화’라는 테마에 좀 더 접근하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라지거나 추억으로 남아있는 사사로운 기억들을 붙잡아 두고 싶은 소망이 지금의 작업이 되었다. 그런데 왜 투명하고 영롱한 비눗방울이 아니라 비누거품일까. 작가는 “그리움이 만들어낸 미화 작용을 시각화하기 위해 비누거품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거품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무언가 정화하는 현상이 마치 시간이 지나 과거 기억을 미화하는 과정과 닮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기억은 소중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 점차 사라지는 것이 더욱 안타깝고 허무하기에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떠 올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 한다. 결국 남채은의 ‘회상 형상’시리즈는 과거의 기억을 깨끗이 씻어내고 정화시켜 더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겨지길 희망하는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것이다.

 

이번 아트스페이스펄의 ‘BETWEEN’, 공병훈과 남채은의 ‘사이’전은 젊은 작가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현실, 청년의 삶을 투영하고 있음을 본다. 보석처럼 빛나는 유리나 거품처럼 부드럽고 투명한 비누방울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 공병훈과 남채은은 이러한 불안을 영원히 깨어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그림으로 그린다. 이 작가들의 바램이 담긴 그림에는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만들고 가꾸어 가는 ‘사이’, 그 속에 화가의 꿈을 이루는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정명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