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철은 현재 중국 상해서 살고 있다. 그는 상해 교통대학(Shanghai Jiao Tong University)에서 강의를 하면서 단편이나 장편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그것을 글로 쓴다. 그가 쓴 시와 시나리오는 장편 영화(개다리 춤꾼)로 만들어져 동경영화제 상영을 통해 주목 받는 영화로 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황 작가는 그 자신이 꿈꾸 는 종합예술에 한 비전을 영화예술로 승화시켜 가고 있다. 어쩌면 황 작가가 만드는 영화는 그가 꾸어 왔던 ‘화가의 꿈’,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기억, 그 기억 의 질곡을 감각하는 몸의 울림이 시로 회화로 혹은 조각에 녹아들어 제3의 시·공간으로 탄생하는 꿈의 현시일 것이다. 황우철은 불혹의 나이에 ‘나’와 ‘그림’에 대한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가득한 ‘화문집’인 「화가의 꿈」을 통해 밝혔었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을 오가며 유목적 인 삶 속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황 작가의 예술적 고뇌와 비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글이 새삼 와 닿는다.
“나 : 작가가 되고 싶었다. 예술가가 되겠다고 일기장에 적었던 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고 그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왔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그 가슴 답답함 때문에 미국으로 향했고 팔년의 뉴욕생활을 했다. (…)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웠다. 일일이 다 열거하기조차 힘든 수없이 많은 작가들과 친구 동료들로부터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배웠다. 이러한 긴 여정이 지난 후에야 나는 나의 몸으로 돌아 왔다.(아마 아직도 돌아오는 중일 것이다.) 온몸으로 온몸을 캔버스 위에 올리는 작업이 내가 그토록 갈구하여 온 것임을 알았다.
그림 : 나의 그림은 감정이다. 느낌에 관한 시각적 진술이다. 지적인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달궈져서 연금되지 아니한 그러나 솔직한 감정이다.(…) 당연히 나의 그림은 지적 소산물이기보다는 감정적 또는 동물적인 욕구의 결과이다. 12월의 막바지에 접어 들던 낯선 외지에서의 아침 같다. 추위를 느끼기 보다는 그 이전에 낯선 곳이라는 느낌이 더 추웠던 그때 바로 그러한 필사적인 안도감을 필요로 하던, 그러한 상태가 그림 그리기 딱 좋은 상태이다. 왜냐하면 외로운 자들이 숨어서 위안 받을 수 있는 유한한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비에 온몸이 젖어서 살까지 뭉텅뭉텅 젖은 그런 날이 작업하기 좋은 날이다.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께서는 일기는 날마다 써야 ‘일기’라고 하셨다.” -황우철의 ‘화가의 꿈’중에서
16년 전 황 작가의 글과 그림으로 엮은 <화문집>인 「화가의 꿈」에 쓴 글을 꺼내 다시 읽어보니 화가의 꿈이 미래를 향하는 것이라기보다 현재의 시간임을 느낀다. 그는 지금도 화가의 꿈을 향한 호흡을 날마다 일기 쓰 듯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 주제가 ‘Day by Day(날마다)’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아트스페이스펄이 오픈한지 만 10년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10년간 지나온 날들을 기념하기 위한 초대전이기보다는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다가 잠시 지쳐있던 내게 자극제가 되었던 「화가의 꿈」에 대한 기억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품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가올 10 년도 예술 활동을 하는 작가들과의 소통으로 서로 다른 꿈일지라도 그 꿈을 예술로 지속해 가기위한 다짐을 한다. 「화가의 꿈」에 대한 기억은 황우철의 개인전을 보러갔다가 책 한권을 선물 받았었다. 그 책은 창작에 대한 열정이 담긴 황 작가가 쓴 「화가의 꿈」이다. 2005-6년 쯤 10년 정도 독립큐레이터로 전시를 하면서 지쳐있던 나의 초심을 깨웠던 책이었다. 이 책 속에는 작가의 심장에 뿌리내린 뜨거운 열망이 고뇌에 찬 글과 그림 곳곳에 투영되어 있었다. 종이나 천과 마주하며 불혹에 느꼈을 욕망이 자유로운 듯 준엄한 색과 행위의 흔적들로 그만의 호소력을 발했다. 화가의 꿈이자 청년의 좌절과 희망이 뒤섞인 욕망을 그는 피를 잉크삼아 글을 쓰고 붓 끝 심장의 뿌리로 그린 그림들을 300페이지 가량의 책에 담았다. 욕망의 그림자인 글과 그림은 30대의 혈기 왕성한 작가가 품었던 꿈이었다. 그 꿈은 뜨거운 심장의 펌프질 때문인지 간헐적으로 눈에서 눈물(눈물을 흘리는 자화상)이, 머리에서는 뿔(뿔이 난 자화상)이 되어 솟아났다. 그의 말처럼, “패기만만하고 영감으로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은 젊은 화가는 암세포에게 조차도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하는 자신의 피와 그 빛깔보다 붉은 인주를 묻혀 난을 치기 시작한다.” 피보다 붉은 인주로 친 난으로 품은 결기가 40대에 져야 할 무게를 지고 다시 50대중반, ‘Day by Day’로 와서 2019년 현재를 숨 쉬는 예술로 만난다.
황우철의 이번 전시는 과거와 미래를 품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10년을 향한 화가의 꿈을 본다. 여전히 “나는 색으로 사유 한다”고 했던 울림이 잔잔하게 화면을 채운다. 3~40 대의 결기를 50 대의 필력으로 부드럽게 감싸듯 강열한 색을 섬세한 붓 터치로 조율한다. 작가의 눈과 손은 사람과 풍경 그리고 나무와 꽃 들에게 선과 면을 겹쳐 그 사이를 마치 수를 놓듯 한 점 한 점 색으로 사유한다. 황우철 작가는 일본 와세다 대학 영화과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영화의 실제와 이론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작가는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그림으로 확장해 영화에 녹여낸다. 황 작가는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그림으로 그린다. 이번에 전시되는 황우철의 작품은 작가의 회화적 시선이 담긴 일상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날마다 일기를 쓰듯, 그가 호흡하는 도시의 집과 학교 그 사이를 보고 감각하는 풍경들이다. 이번 아트스페이스펄에 전시되는 작품은 황우철의 신작 16점과 이전에 활동한 영상과 사진 아카이브를 함께 전시한다. 그가 장편 영화를 만드는 과정의 일부와 단편과 장편의 영화를 통해 길고 짧은 이미지들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