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경 개인전 : Off Balance

정문경 개인전 : Off Balance

Chung Munkyung

OFF BALANCE

22. 4. 12 - 4. 30 / ART SPACE PURL

Crosshair 조준선, mixed media, 65x65x5cm, 2022

<전시연계비평프로그램 >

-미술비평활동 Eco-Sensibility(감성생태)

-비평트립 : 김옥렬(전시기획, 평론), 강미정(미학자)

-기획 : 정명주

-주최/주관 : 아트스페이스펄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평활동

아트스페이스펄은 2022년 동시대미술을 견인하는 현장비평과 전시기획을 연결하여 창작과 비평의 과정을 보여주는 <감성생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청년작가 3명(정문경, 김윤섭, 신준민)을 초대하여 릴레이 개인전시를 진행하면서 미술평론이 텍스트에서 벗어나 작가,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기 위한 현장비평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 가기 위한 시도이다. 작가가 작업실에서 매체와 씨름하며 창작하는 과정이 필요한 만큼 비평가는 서재에서 텍스트와 마주하며 고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창작과 비평은 전시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호 공존하게 되며 감상자는 그 사이를 산책하며 시청각적 사유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 감성생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김옥렬(현대미술연구소 소장), 강미정(미학자)은 현장비평이 다양한 깊이와 무게로 다가가길 기대하며 창작과 감상의 소통을 강조한다.

 

Lost Title, mixed media, 13x19x2cm, 2018

Facing the Wall 벽 마주보기, mixed media, 15x15x13.5cm, 2018

감성생태 프로젝트에 초대된 첫 번째 작가는 정문경이다. 오브제와 설치를 통해 인간의 독특하고 불안정한 심리를 표현하는 작가는 주로 어릴 때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가정에서 항상 사용하는 익숙한 물건, 누군가 입었던 옷 등 이미 사용된/되고 있는 사물을 오브제로 사용한다. 누군가의 손때 묻은 사물은 아무리 깨끗이 닦고 빨아도 그 느낌을 지우기 쉽지 않다. 정문경은 그 사물의 쓰임새나 기억을 지우기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관람자에게 감성적 공간을 열어두고 있다. 이번 전시 제목 <Off Balance>는 긴장의 최고조에서 힘의 균형을 순간적으로 깨면서 새롭게 상황을 역전시키는 전환의 기술이다. 자의적 또는 타의적 오프밸런스에서 다시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 순간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

Untitled, scanning, 디지털프린트, 114x88cm, 2012

Akimbo, mixed media, 모터, 사운드스피커, 35x35x85cm, 2020

정문경은 오프밸런스의 심리적 압박감을 ‘조준선’(2022)에 담아 표적과 초점에서 해방될 수 없는 불안감을 표현하였다. 스테인레스 볼록거울을 들여다보면 수천번 긁혀서 새겨진 표적을 발견하게 된다. 볼록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초점의 중앙에 서는 순간 자신이 표적의 대상임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작품 ‘Akimbo’(2020)는 작가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손 허리 포즈의 작은 인형들을 오브제로 사용하였다. 이 작품은 어릴 때 듣던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이라는 음악 소리에 맞춰 반복적으로 돌아간다. 손가락 크기의 작은 인형 12개는 빨강, 파랑, 녹색의 짧은 치마를 입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의 여성들이다. 2차 산업사회시대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는 이 오브제는 4차 산업시대인 현재에도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Lost title’(2018) 작품에서 작가의 콘셉트가 잘 드러난다. 다락방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을 것 같은 낡은 책 하나, 표지가 뜯겨나가 언뜻 보면 제목이나 내용을 알 수 없다. 이미 오래전 무용지물로 변해버린 책은 가운데 못이 박힌 채 벽에 고정되어 있다. 작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낡은 책을 전시장에 설치함으로써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 대상으로 변한 상황에 집중한다. 이제 이 책은 ‘잃어버린 제목’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으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받았으며 재탄생의 기회를 얻었다.

모범생과 우등생 Super duper student & goodie goodie student,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16

White noise’(2019) 타의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브라운관 TV를 오브제로 사용하였다. 아직 사용 가능한 기계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면서 자연스럽게 밀려났고 방송사의 아날로그 송출마저 끊겨버려 아쉽게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작가는 기계의 모든 기능이 정상적이지만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그 몫을 다 하지 못하도록 강요된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브라운관 티비를 보자기로 싸고 묶음으로써 오브제 자체의 기능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전시장에서 이 작품은 항상 전원이 켜져 있고 지지직거리는 소음을 발생시키며 새로 부여된 역할에 충실한 기계가 된다.

입 속의 검은 잎(2015)은 정문경 작가의 비디오 작품이다. 시인 기형도의 시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민주화 항쟁으로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의 끝자락인 89년도에 발표된 그의 유고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입 속의 검은 잎’은 말할 수 없는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정문경은 가끔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자리임에도 내지 않는 경우를 상기하며 그 상황이 자신의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회적 요인이나 주변 환경 때문인지 이유가 불명확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말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되면 심하게 자아비판을 하거나 반대로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를 체험했다. 말하고 싶지만 말 할 수 없는 또는 말은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억압적인 분위기는 누구나 겪었을 법하다. 퍼포머들은 입술 부위만 뚫어서 재봉한 검은 마스크를 쓰고 들리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입술이 부딪히는 소리, 침이 넘어가는 소리와 노출된 입술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입 속의 검은 잎 Black leaf in Mouth, 단체널비디오,  7min 38sec, loop, 2015

White Noise, 브라운관 tv, 천, 50x45x55cm, 2019

항상 존재하지만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물을 인식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차이는 개인의 경험과 관심으로 인해 기인하는 것이다. 작품 ‘Tick tack’(2019)은 인공 심장 박동기를 착용한 사람은 오작동 위험이 있으니 접근 주에 의하라는 표지판으로 만들어진 네온사인이다. 작가는 이 네온사인에 얇은 보자기 천을 씌워 표지판 내용이 어렴풋하게 드러나도록 설치하였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이 사인물은 관련자에게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곳임을 경고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인식하는 것에는 어떤 결정적인 요인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정문경 작가는 오랫동안 자신이 갖고 있거나 수집한 오브제를 심리적 갈등에 투영하며 창조적 치유자가 된다. 이번 전시 주제인 ‘오프밸런스’는 무너진 균형을 다시 추슬러 일으켜 세우고 갈등을 전복시키고 회복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21세기의 사회는 4차 산업시대의 새로운 혁명을 기대하며 인간과 AI의 상호 공존 시대를 열고자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팬데믹으로 인류가 위협받고 있으며 그 막바지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또 다시 우리의 미래는 불분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평화와 화합의 균형은 깨졌고 기나긴 침체기로 이어질까 모두들 두려움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더욱 예술가의 치유적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까.(글/정명주, 아트스페이스펄)

Untitled, scanning, 디지털프린트, 88x114cm, 2012

우중의 나이, 페트리디쉬, 흰머리, 20x20x2cm, 2020

젖니 Milk tooth, mixed media, 5x5x7cm,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