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경은 오프밸런스의 심리적 압박감을 ‘조준선’(2022)에 담아 표적과 초점에서 해방될 수 없는 불안감을 표현하였다. 스테인레스 볼록거울을 들여다보면 수천번 긁혀서 새겨진 표적을 발견하게 된다. 볼록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초점의 중앙에 서는 순간 자신이 표적의 대상임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작품 ‘Akimbo’(2020)는 작가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손 허리 포즈의 작은 인형들을 오브제로 사용하였다. 이 작품은 어릴 때 듣던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이라는 음악 소리에 맞춰 반복적으로 돌아간다. 손가락 크기의 작은 인형 12개는 빨강, 파랑, 녹색의 짧은 치마를 입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의 여성들이다. 2차 산업사회시대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는 이 오브제는 4차 산업시대인 현재에도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Lost title’(2018) 작품에서 작가의 콘셉트가 잘 드러난다. 다락방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을 것 같은 낡은 책 하나, 표지가 뜯겨나가 언뜻 보면 제목이나 내용을 알 수 없다. 이미 오래전 무용지물로 변해버린 책은 가운데 못이 박힌 채 벽에 고정되어 있다. 작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낡은 책을 전시장에 설치함으로써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 대상으로 변한 상황에 집중한다. 이제 이 책은 ‘잃어버린 제목’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으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받았으며 재탄생의 기회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