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4. 25 wed ~ 2018. 05. 27 sun
신준민 Junmin Shin
시간 여행자의 기억-시간적 인간의 인간적 시간-기억
2016년부터 일상을 ‘모험(Adventure)’으로 물리적 우연이 아닌 감각을 통한 새로운 에너지의 만남을 여행하는 작가의 삶이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작가는 미술의 언어로 세상에서 느끼는 모순된 현재와 과거를 표현한다. 끊임없이 여행하고 끊임없이 떠나지만,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내재한 감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간을 대하는 인간의 보편적 태도는 ‘기억’과 ‘망각’의 관계에 관련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성과 의식작용이라는 차원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붙들려는 의지를 발현(기억)하거나, 흐르는 시간을 그대로 놓아버리는 것(망각)일 것이다. 따라서 기억과 망각은 ‘인간적 시간’의 두 가지로 생각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시간적 인간이 ‘기억’이라는 인간적 시간을 형성한다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기 위한 능동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흘러가는 것 가운데 흐르지 않는 것을 생각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다. 기억은 살아있는 ‘역동적인 과정’인 것이다.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삶에 관한 능동성의 구현은 이처럼 시간을 붙들려는 인간적 노력인 ‘기억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며 인간의 공감과 교감은 이러한 ‘기억하는 것’을 쉽게 만드는 이 인간적 시간은 신준민 작가에게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경험으로 남아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다. 작가는 주위를 둘러싼 세계를 항상 ‘관찰’ 하기도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는데 어느 날 문득‘기억’속의 풍경과 마주한 풍경이 만나는 순간이 있다고 하였다.
시간 여행자- 낯선 풍경의 낯익은 조우
아트스페이스펄의 한쪽 벽면은 작가의 새로운 설치 공간으로 새로운 해석을 접목한 설치 벽과 ‘모험(Adventure, 2018)’ 영상이 자리하였다. 회화에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과는 다르게 공간, 빛, 영상, 회화, 설치를 함축적,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택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빛과 재료의 조화와 시간에 따른 공간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현재는 ‘오래 전부터’ 이미 지나간 시간의 현재화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시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면서 다른 단계를 요약한다.’ 라고 했던 들뢰즈의 시간론은 작가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기도 한다. 작가는 ‘항상 마주하는 풍경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처음 보는 풍경이 이전에 본 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하였다. 영상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마주한 ‘낯섦’을 통해 본인의 현재를 되돌아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물 위에 떠다니는 환경 오염 물질인 오염이 물에 비친 나무 위를 지나가는 순간은 마치 하늘에 눈이 오는 듯한 착시가 나타나기도 한다. 설치 벽 오른쪽 편에는 흰색 반구형태의 설치 오브제를 제작하였다. 이는 전 작품에 사용하였던 남은 지구본 반쪽으로 오락실 버튼, 옷걸이, 스프링, 돋보기 등으로 새로운 움직이는 회전체가 함께 제작되었다. 마치 시간여행에 쓰이는 도구처럼 멈추어진 시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사물로 등장한다. 또한 지난 작품에 등장했던 ‘동물원의 원숭이’가 이번에는 박제 실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과거에 만났던 동물원 원숭이의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원숭이 이미지가 있는 벽면은 작가가 물과 시멘트를 사용하여 회화적으로 표현이 첨가되어 제작되었다. 작가는 멈추어진 세상에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요소를 넣어서 이 순간이 과거에 지나 가버린 한 순간이라기 보다는 다시 우리가 마주할 수도 있는 미래 혹은 다시 만난 과거일 수도 있다는 것을 현재의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시간의 함축-들리고 느껴지는 회화
아트스페이스펄의 가장 넓은 전시 벽에 자리한 ‘화이트 시티(White City, 2018)’는 작가의 일상에서 익숙한 아파트 건물을 지속해서 시차를 두고 바라본 경험을 그려내었다. 평면의 회화이겠지만 작가에게는 과거의 경험과 최근의 시간이 겹치는 순간이다. 이 시간의 함축으로서 마치 그 건물 앞에 서서 눈앞을 가로막는 바람 소리와 시야를 가리는 나뭇잎들을 표현하여 관객도 그때 그 순간으로 이동하는 모험을 제공한다. 또한, 화면에 등장하는 아파트는 단일 건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 작가가 같다고 느꼈던 건물을 한 건물처럼 담아내었다. 이처럼 작품 소재로 선택되는 풍경들은 작가에게 ‘기억’ 되어서 재구성된 화면이다. 이 ‘기억’에서는 때로는 시간이 중첩되기도 하고 하나의 건물이지만 다른 건물을 보고도 과거에 보았던 그 건물을 떠올리며 화면을 구성하였다. 때문에 신준민 작가의 풍경은 다양한 장소성과 시간성이 중첩되어 서사적인 영화의 줄거리를 담고 있다. 화면에는 여러 날 여러 번의 물감이 화폭에 쌓이고 다시 뿌려져 덧입혀지는 물감의 층위가 남아있다. 이러한 공기의 흐름의 붓질은 ‘타워(Tower, 2018)’에서는 바람에 솟구치는 장면에 관객도 풍경 속의 휘몰아치는 바람의 소용돌이는 느끼게 된다. ‘미러볼(Mirror ball, 2018)’에서는 음악과 현란한 조명의 빛이 화폭에 담겼다. 화폭은 마치 동영상처럼 다양한 소리와 감각을 함축하여 관객에게 작가의 과거의 순간을 현재에 공유한다.
의인화된 풍경과 마주친 대상들
처음 만화를 그리고 싶어 회화를 선택했다고 한 작가의 감각적인 위트가 여러 점의 드로잉작품에서 만 날 수 있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형태의 하수구 구멍, 자동차 헤드라이트, 건축 파이프들이 그 대상들인데 이들은 서로 대화를 하듯 마주 보고 있다. ‘White City(2018)’나 ‘Mirror ball(2018)’에서의 작가가 외부에서 관찰자의 시점을 가졌다면, 이 드로잉들에서는 작가가 화면 내부에서 마치 공존하는 듯 그 대상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하고 있다. 하나 하나 캐릭터처럼 등장하여 캔버스 프레임은 만화의 콘티와 같이 구성하고 있다. 작가는 “페인팅에서는 때에 따른 그 동안의 풍경들을 중첩했다면 (이번에 설치한) 벽면에서는 ‘나의 사물(my object)’개념으로 일상을 다니며 보고 몸으로 체화 된 감각을 재료들의 물성과 재질감 색채로 꼴라주”한 것이라고 하였다. 사소한 일상의 사물을 미학적인 대상으로 발견해 낸 작가는 길에서 마주친 우리 주변의 대상을 특별한 생명력을 가진 물체로 재현하였고 이들을 모아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전시하였다. 또한 전‘Everywhere_마차(2017)’에서 다루었던 풍경을 이번에는 벽면 설치에서 재현하였다. ‘Everywhere_마차(2017)’설치에서는 회화에 주요 소재로 등장했던 오브제들(조명, 나팔, 철조망, 오락기)을 사용하여 아치형, 격자, 수평 등의 조형적 구조로 재배치했다. 작가는 ‘일상을 통한 끊임없는 여행은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 본다고 하였다. 실제로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물리적인 구조로 설치했던 것과 달리 이번 설치에서는 물리적으로는 벽면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Adventure(2018)’ 영상을 배치하여 시각적으로 어디든지 이동하고 있는 시각적 모험공간을 구현하였다. 실제로 이 설치 벽면에서는 전작에서 사용하였던 오브제를 다루는 방식을 볼 수 있다. ‘진실의 입(2018)’의 인간형태와 가장 유사한 형태가 등장한다. 이는 실제 존재하는 물건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지만 마치 생명력을 가진 대상처럼 표현하였다.
도시와 자연-사회 속 존재에 대하여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사회 내 존재’로서도 작가는 고민했던 것 같다. 작업하는 삶과 동시에 본인을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추구하고 그 변화의 흐름에 함께 하는 활동들에 참여하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구성원의 실존을 방해하는 현존재적 조건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실존’을 ‘사회적 실존’ 이라고 하는데 ‘썬데이페이퍼’, ‘예술공간 거인’, ‘아트클럽삼덕’ 등의 활동을 통하여 대구 지역 사회 내에서 본인의 역할을 보여 준다. 서울에 많은 신생공간의 움직임 속에 대구 지역 작가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신생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인 예술가들과 함께 두 곳의 예술 공간 운영에 참여한다. 청통에 위치한 ‘예술 공간 거인’은 거대한 냉동창고가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공간이었고, 대구에 위치한 ‘아트클럽삼덕’은 소박한 가옥의 형태로 두 곳 모두 기존에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곳은 아니었으나 작가들의 의지로 ‘예술 공간’으로 재 탄생한 곳이었다. 이 공간의 운영에 직접 참여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작가는 본인이 속한 환경과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태도로 존재하려 노력하였다. 또한, 위 두 곳을 예술 공간으로의 운영하는 것은 우리 주변과 도시 속 과거의 공간들에 대한 현재의 활용과 역할에도 중요한 활동이었다. 작가가 개인의 작품을 위해 작업실에서 고독과 싸우는 존재가 아닌 사회의 현상을 이끌고 문제를 해결해 가려는 적극적인 구성원으로 본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작가는 도시와 자연의 모습을 동시에 담기도 하였다. 화면 속에서 도시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은 없고 건물만 도시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어떻게 존재를 알 수 있는지를알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가 속한 사회에서 다른 조건들과 관계를 통해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작품과 그간의 활동으로 말해 준다. ‘화이트 윈드(White wind, 2018)’에서 보이는 바람은 중앙에 펄럭이는 천의 움직임과 스산한 분위기로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표현하였다. 영상 작품 ‘Adventure(2018)’에서 작가는 도시와 자연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영상은 오염된 하천의 표면 모습에서 시작한다. 인간들이 버린 오물들은 자연을 덮어 버리고 어둡고 이상한 거품과 알 수 없는 물질들의 덩어리들이 물 위를 떠다닌다. 하지만 그 오염물질들이 물에 비친 하늘과 나무와 어우러져 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도시의 환경의 문제를 작가만의 위트를 담아 제시한다. ‘모험’ 영상은 모순적으로 작가의 집 주변의 자연환경에서 온 것, 밤, 낮, 물가 등 작가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가 이동작가의 회화적 표현과 영상적 구성이 함께 간다. 그렇다면 도시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유일하게 인간의 형상과 닮은 대상은 ‘진실의 입(2018)에 등장하는 형상이다. 화면에서 인간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었고 분명 존재감을 표현하였다. 어쩌면 바람과 빛이 사람의 존재를 대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상작품이 설치된 ‘드로잉 벽면(2018)’은 푸른 빛, 초록빛, 투명한 플라스틱 판넬 재료와 시멘트로 도시개발과 맞물리는 건축 재료들을 사용하였다. 더불어 작가는 오염된 도시의 자연을 영상에서는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담았다. 부정과 긍정의 모순된 의미와 현상을 하나의 시공간에 표현하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회에 이야기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라 보인다. 전시장 전체가 우리가 사는 도시의 축소판처럼 여겨지는 것은 모험의 출발과 현재의 위치가 바로 ‘일상’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감각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살고 있는 풍경을,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 / 송요비(10AAA,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