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운 Shin Kiwoun
2020. 7. 8 wed ~ 7. 26 sun
피아니스트 고희안 라이브 퍼포먼스
7월 7일, 5pm / YouTube 아트펄tv 채널www.youtube.com/user/artspacepurl
무에서 그 무엇으로 그 모든 것으로 From Nothing, To Something, To Everything
‘대면 혹은 비대면’으로
“위대한 예술은 그것이 이해되기 이전에 전달될 수 있다.” 20세기 현대시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이 말은 이해 없이 전달 될 수 있는 작품에 이런저런 말들을 부언하는 글쓰기가 위대한 예술을 헛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한걸음 들어가 본다. 이해에 앞서 전달되는 것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의 차이와 의미를 알기 위해서, 무에서, 그 무엇으로, 그 모든 것으로.
신기운의 전시에 대한 글쓰기는 이해보다는 전시가 이루어진 배경이나 작품을 보는 나의 시선이 가 닿는 곳에 대한 의견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화자와 청자 간의 이해방식의 차이가 없는 예술이라면 팥 없는 찐빵일 것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이 말이 크고 넓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예술의 힘은 저마다의 상상력이 가 닿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기운 작가의 전시는 대구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소통방식에 대한 방법적 변화를 갖게 했다. 작가와의 몇 차례의 대면을 통해 공간과 장소 그리고 기존의 작품과 그것을 소통하는 방식과 내용을 정리하고 ‘대면과 비대면’이 가능한 전시를 한다. 그래서 신기운의 이번 개인전은 비대면 소통을 고민해야하는 시기에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는 하나의 출발이다. 물론 이러한 그의 작업내용이나 소통 방식은 이전에도 다양한 방식의 시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번 전시 오프닝은 ‘비대면’이지만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유투브(you tube)의 아트펄tv로 실시간 스트리밍(streaming)한다. 그 내용은 신기운 작가의 영상 작업을 피아니스트인 고희안이 연주하는 방식이다. 전시 공간에는 이전에 시도했던 공연기록 영상을 모니터로 상영하고, 새롭게 완성된 영상은 피아니스트의 라이브 연주로 진행된다. 이번 전시작은 서울, 대구, 경산의 풍경을 2-3일간 카메라 노출로 촬영한 풍경들이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이 하나의 공간에서 두 개의 영상으로 스크리닝(screening)되고, 그 영상에 따라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현장성을 살린 라이브 퍼포먼스가 이루어진다. 이번 전시 현장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소수의 사람만이 관객으로 참여한다. 장소는 다르지만 동일한 시간에 온라인을 통해 ‘비대면’으로 동시 관람이 가능한 전시이다.
시각적 여운이 ‘심리적 잔상’으로
신기운 작가의 이번 영상작품은 자신이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한 ‘심리적 잔상’(Psychological after-image)이다. 그가 보고 느낀 특정한 시‧공간의 풍경은 ‘살았던 곳’에서 ‘떠나야 할 곳’ 그리고 ‘살고 있는 곳’이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전의식( preconscious)이 각각의 층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을 자각하는 어떤 흔적을 통해 접점을 이룰 때, 이 ‘사이-공간(interval-space)’은 연결된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 줄 장소는 서울, 대구, 경산의 풍경을 영상으로 연결한 ‘심리적 잔상’이다. 이 잔상은 삶의 기억이 담긴 장소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기위해 짐을 싸면서 느낀 자국들, 그 ‘사이-공간’을 연결하는 ‘사라지는 것’에 관한 심리적 잔상이다. 이 잔상이 생기는 ‘사이-공간’에는 ‘나’라는 자각이 생기는 장소에 대한 그 만의 기억이 자리한다.
이렇게 신기운의 일련의 영상작업은 ‘사라짐’, 그 부재에서 느끼는 기억의 편린(片鱗)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 속에서 공(空)과 무(無)의 의미 속으로 들어간다. 코로나19의 공포가 극심할 때, 행인들이 오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공간, 침묵의 시간 속에서 부재를 보는 시선에는 상실감이 자리한다. 이 상실감은 ‘무에서, 그 무엇으로, 그 모든 것으로’라는 전시의 주제처럼, 작가의 영상이미지와 고희안의 피아노 연주는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과 불안 속에서 움직이고 흔들리고 흘러가는 풍경, 부재를 채우는 존재의 시선일 것이다.
신기운작가가 촬영한 서울과 대구 그리고 경산의 풍경이 담긴 영상작품을 보면서 재즈 피아니스트 고희안의 즉흥연주는 영상이 그린 풍경을 촉각적인 퍼포먼스로 초-연결(hyper-connected)시대를 제3의 감각으로 열어간다.
‘사라짐’, 부재에 대한 것으로
“나는 그라인더로 갈아서 하는 작업이 많다.” 작가의 이 말에는 가상이 아닌, 실재하는 어떤 물질을 간다는 것,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성을 전제한다. 확실히 신기운의 작업은 특정한 물건을 그라인더(grinder)로 갈고 또 가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작업이 눈에 띤다. 동전도 갈고 만화의 캐릭터이자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아톰도 시계도 그라인더로 간다. 그러다가 갈리는 소리와 속도를 조절하고 그 과정을 보다 명확하게 영상에 담을 수 있도록 그라인더를 직접 제작하는 기술력도 발휘했다. 멀쩡한 물건을 왜 갈고 또 가는 것일까.
21세기 디지털 영상으로 작업하는 작가에게 캐릭터인 아톰은 어린 시절 기억 속 친구였다. 그래서 아톰은 기억 속 자아와 현존재 간의 관계 설정으로 사라진 시간을 역순으로 돌려 재탄생시킨다. 이렇듯 신기운의 ‘사라짐’은 사라진 것과 사라지는 것의 개연성을 관통해 재탄생한다. 잠재의식과 만나는 그라인더 기계장치는 시간을 돌리고 기억을 파고든다. 파편화된 기억의 잔상은 시‧청각적 감각으로 녹아들어 재-기억(re-mind)되는 시간이다.
신기운은 ‘사라짐’을 역사성과 인류학적 메타포, 즉 환상을 깨트리는(Dis-Illusion)것으로 설정한다. 그의 이 영상작품은 과정이 보이도록 장치를 만들어서 인터벌 촬영으로 4~5시간 동안 만든 영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돈에 새겨진 인물과 식물 그리고 건축과 달리 동전을 얼굴에 새긴 알렉산더 대왕의 경우는 정복의 상징이다. 신기운이 제작한 그라인더는 동전에 얼굴을 새긴 최초의 왕, 정복을 기념하는 코인을 먼지로 되돌린다.
무엇보다 동전은 가장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교환가치를 가진다. 작가는 그런 동전을 갈아서 가루로 만든다. 이 상징적인 교환가치의 ‘사라짐’에는 동시에 ‘죽음’이 내재되어 있다. 이 사라짐과 죽음에는 일종의 ‘무’와 ‘없음’을 수반한다. 프랑스의 철학자로 미디어 소비사회 이론가인 보드리야르(Jean Bauderillard)는 상징적 교환에서 교환되는 ‘무’ 혹은 ‘죽음’ 은 죽음을 배제하는 가운데 죽음을 시뮬라시옹하는 과정으로 본다. 이를테면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은 악에 대립하는 것이기보다는 악을 시뮬라시옹(Simulation)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상징적 교환가치라는 것은 죽음을 배제한 가운데 죽음을 시뮬레이트하는 방법으로 무엇과 교환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가치라는 개념, 이는 생산과 소비, 삶과 죽음 모두에 내재된 과정이기도 하다. 보드리야르에게 있어서 죽음은 말 그대로의 죽음이 아니라 일종의 사라짐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사라짐’은 시뮬라크르의 형태로 참여하는 생산의 과정이고 동시에 시뮬라크르한 사회에서 자신을 소거한 주체는 사물과 생산품들에 자신을 이입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원본 없는 가상적 모방, 인공적인 유사성을 가진 시뮬라시옹의 결과인 시뮬라크르가 오리지널을 대체하는 것, 실체 없는 시뮬라크르의 반복으로 가상과 실제가 구분되지 않는 ‘다름’이 사라져 버린 모상, 어쩌면 이는 획일화되고 무한 재생산되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메타포, ‘사라짐, 부재에 대한 메타포를 보는 작가적 시선일 것이다.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어떠한 사실성과도 무관하다: 이미지는 자기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simulacre)가 되는 것.”처럼.(장보드리야르, 하태완 역 『시뮬라시옹』, 민음사,1992)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신기운의 이번 전시는 일종의 실시간(real time) 작업과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창작과 감상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비대면’전시이다. 오프닝 라이브 퍼포먼스를 위한 쇼잉(showing)을 차용한 신기운의 영상작업은 피아니스트인 고희안이 그 영상을 보고 즉석 연주를 하는 것이다. ‘영상과 연주’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이 상호작용이 이루어진 영상과 연주의 콜라보는 당일(7월7일) 마스크를 쓰고 온 소수의 관람자와 유투브(아트펄tv)로 실시간 송출하는 라이브 연주를 보는 관람객을 통해 완성된다. 콜라보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바이올린이 그라인더에 갈리며 점점 사라지는 영상도 전시무대에 오른다.
이 전시는 두 사람의 공연과 소수의 현장관람객 그리고 온라인으로 보는 불특정 관람객과의 현재성이 실시간 소통되고 또한 즉각적으로 기록되는 전시이다. 이번 신기운 작가의 아트스페이스펄 전시는 ‘대면’과 ‘비대면’을 위한 시도다. 이 전시가 완성되는 것은 벽에 투사된 신기운의 영상과 그 영상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이미지를 소리로 필터링하는 고희안의 그랜드피아노 연주 그리고 마스크를 착용한 10여명 정도의 관객에 불특정다수의 온라인 관객이 이 전시에 참여한다. 유투브로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두 시간의 공연은 영상으로 기록이 되고, 이 기록된 영상은 다음날(7.8-26일까지)부터 아트스페이스펄에서 영상전시로 이어진다.
신기운의 이번 전시 영상에는 사람이 없다. 인적조차 없는 야구 경기장과 공연장의 객석은 고요한 적막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부재’를 보는 작가적 시선이 담긴 시간과 장소,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19에 대한 작가적 시선의 투사가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이다. 일상 속에서 바삐 오고가든 수많은 발길의 흔적이 사라진 적막함을 깨는 것은 아파트공사 현장에 임시 설치된 천막의 흔들림 뿐이다. 색의 일정부분을 빼고 화이트를 조절해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사람이 사라진 텅 빈 도로, 2-3일 장시간 촬영한 풍경은 3-4분으로 편집되어 전시장에서 펼쳐진다. 무에서, 그 무엇으로, 그 모든 것으로.
글 / 김옥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