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UK LEE “EYECON”

EUNUK LEE “EYECON”

이은욱 개인전

아이콘 EYECON

2024. 7. 3 - 7. 17 / 아트스페이스펄

기획 : 이윤종(SEOFAC), 송요비(10AAA) 주관 : 현대미술연구소(CAI)/아트스페이스펄

EYECON, video 3분 9초, 2006

EYECON: 눈_세상을 만나는 창으로써의 신체 / 그리고 ‘I’를 대신하는 ‘Eye’

전시 제목으로 선택한 아이콘(eyecon)은 시대의 우상을 의미하는 아이콘(icon)과 같은 발음을 가지지만 다른 의미로 사용한 작가가 단어 조합으로 만든 단어이다. 내면의 세계를 영상으로 작업한 초기 영상 ‘아이콘(EYECON, 2006)’은 작가의 작품 세계의 시작지점으로 사전에 존재하는 아이콘(icon_특정한 사상·생활 방식 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우상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창인 눈(EYE)을 통해 작품에 자신(I)의 생각을 담아내고자 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후 작가의 드로잉 작품에 가늘고 다양한 선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화면에도 눈의 형태가 숨겨져 있듯이 곳곳에 그려졌다. 화면의 삼각형, 원, 그리고 가로지르는 직선들은 우주의 건축적 구조와 수학 패턴을 통해 특정 형태를 완성해 간다. 종이와 캔버스 위의 선들은 작가의 출생년도를 의미하는 ‘숫자 81’, ‘눈(EYE)’과 ‘자아(EGO)’라는 글자들과 눈을 그린 도상들 모두 작가인 ‘나I’를 지시한다. 또한 드로잉 화면 위 검은 선의 움직임은 매번 새로운 형태와 함께 복잡한 선의 미로 형상으로 나타난다.

예술- 생각 에너지의 순환

‘개인적인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라고 했던 릭 루빈(2023)은 예술이 생각 에너지의 순환이라고 하였다. 에너지는 매번 다른 방식으로 결합해서 돌아오기에 새로워 보이고, 그래서 세상에는 똑같은 구름은 없다는 것이다. 처음 접하는 예술 작품이 깊은 차원의 울림을 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익숙한 무언가가 그저 낯선 형태로 돌아온 것이기에 깨닫지 못할 뿐, 그것이 우리가 찾고 있던 무언가일 수도 있다고 한다. 절대로 끝나지 않는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 같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꾸면 훨씬 작아 보이고 세상의 것이 아니었지만 세상의 것이 되게 한다고 하였다. 이은욱의 알고리즘 드로잉을 보면서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작가가 화면 위에 만들어낸 에너지의 선들이 마치 설명을 초월하는 훨씬 거대한 무언가, 즉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계의 일부처럼 눈앞에 다가온다.

B-RULE-GLIDING 2, 91x116.8cm, Ink pen, acrylic on canvas, 2019
B-RULE-GLIDING 3, 91x116.8cm, Ink pen, acrylic on canvas, 2020

런던 유학 시절 초기 영상과 시도들

작가는 한 게임회사에 몸담고 있는 삶과 예술가의 삶을 함께 살아오고 있다. 현대미술 작가로서 생존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던 삶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두 가지 삶을 스스로 구분지으려 하면서 지내왔다고 하였다. 작가는 직장 생활 속에서는 초기에는 스스로의 의견과 생각을 드러내는 모습이 있었지만 점차 자신의 의견을 내기 보다 타인의 생각을 들으려 하는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작업 초기에 가졌던 자신감도 많이 잃게되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었다. 초기 작품 “애국가(National Anthem, 2006)”는 작가의 입을 확대하여 화면을 가득채운 영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이방인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고 하였다. 영국에 거주할 당시 많은 외국인이 느꼈을 심리에 대한 작업을 하고자 하였다. “I EAT RUBBISH, 2006”는 템즈 강변에 떠 있는 환경 프로젝트 ‘I EAT RUBBISH’ 뒷 배경에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기관인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등장한다. 화면 속 ‘I EAT RUBBISH’에 대해 작가는 당시 템즈강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설치물을 보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영상을 찍게 되었다고 하였다. 사운드 작업도 함께 시도했던 작품으로 ‘예술인지, 쓰레기인지’ 혼동되는 현대미술의 단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제작하였다고 했다. 20대 당시 작가의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서울 세운상가의 서팩 공간에서의 드로잉 설치와 사운드 아티스트(홍초선)와 협업

“공간의 알레고리 X 또 다른 우주(Allegory of space x Another Universe, 2018, 사운드 홍초선)” 영상은 전시 공간 전체를 그물로 설치하여 알고리즘 드로잉을 공간에 구현하고 그 공간을 사운드 아티스트의 소리로 가득 채웠던 설치 작품이었다.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여 대구의 아트 스페이스 펄 공간에 프로젝션하여 서울의 세운상가와 대구 아트 스페이스 펄의 물리적공간/ 시간적 사이를 관객의 상상으로 채우는 경험을 공유한다. 이 작품은 특별히 사운드 아티스트가 함께 작업하여 2차원적 드로잉을 3차원적으로 재현하고 디지털로 기록한 시공간에 대한 작가의 연구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당시 이은욱 작가는 세운상가에서 이윤종 대표와 함께 서팩을 구성하고 다양한 문화 연구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전시와 연구를 통해 공간이 주는 에너지는 사람을 모이게 하고 생각을 실현하게 하는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대구 아트 스페이스 펄 공간도 역시 사람을 모으고 생각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기에 본 영상으로 처음 상영되는 장소로 적합한 만남이 될 것이다.

I EAT RUBBISH, video 4분 03초, 2006
ALLEGORY OF SPACE X ANOTHER UNIVERSE, video 5분 52초, 2018

알고리즘 드로잉(Algorithm Drawing) : AI기술 발전과 인간에 대한 탐구

개인의 경험과 삶이 작품에 투영되는 것을 이은욱의 작품 ‘알고리즘 드로잉’ 시리즈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능력에 많은 위기의식을 가져온 AI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게임작가들과의 협업이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가에게 중요한 상징인 ‘단안의 눈(single eye)’은 작가 몸의 일부로 외부 세계인 우주와의 창, 주관성의 어두운 큰 구멍hole을 의미한다. 세밀한 선과 면들 사이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미로들은 몸의 광학기관들과 연계하여 작업 표면에 블랙홀들을 생성하면서 중력을 넘어 무한 깊이로 관객을 안내한다. “정의되지 않은 행성간의 알고리즘(Undefined Interstellar Algorithm, 2019)”시리즈 작품에서 타인의 존재는 시간과 공간이 초월되면서 다양한 층으로 나타난다. 컴퓨터 이외 창작가의 역할에 고민을 하는 작가는 알고리즘 드로잉을 통해 인간 창작의 영역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자인 아흐메드 예가말(Ahmed Elgammal)은 명시적으로 자신들은 기계가 새롭고, 창의적(creativity)이고, 흥미로운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을 찾고자 한다고 하였다. 런던 대학교 과학철학과 명예교수 아서 밀러(Arthur I, Miller, 1930~)역시 인간처럼 창의성을 가질 수 있으며, 따라서 이 기반으로 예술 창작 역시 가능할 것임을, 혹은 어쩌면 그 시작에 와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공지능의 그림은 그림 속 형상의 일부 혹은 전부가 왜곡되거나, 또는 형상을 아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구상적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그림은 인간의 추상적이고 비구상적인 현대미술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현대미술에 나타나는 추상적인 요소들은 예술가 개인의 스타일 혹은 즉흥적인 행위의 결과처럼 개별적인 현상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undefined interstellar algorithm vol 1, 57x76.5cm, Ink Pen on paper, 2018
Undefined-Interstellar-Algorithm-Vol.3 (2)
Cosmic Membrane, 80.3x60.6cm, Ink pen, acrylic on canvas, 2024
Cosmic membrane, 80.3x60.6cm, Ink Pen on Canvas, 2024

코스믹 멤브레인(Cosmic Membrane): 개인의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의 탐구

아트 스페이스 펄 전시 공간을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이자 가장 마지막으로 만나는 작품은 최근 작 “우주 세포막(코스믹 멤브레인_Cosmic Membrane)”과 2019년 런던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Transcend-ence_Drawing, 2019>시리즈이다. 우주적 차원에서 이러한 연결이 개인의 내면 세계와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 우리 각자는 우주의 일부로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얇은 막과 같은 공간 ‘멤브레인(Membrane)’에 대한 탐구이다. 이 막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우리의 의식과 우주적 에너지가 만나는 접점을 의미한다. 작품 속에서 이 막은 때로는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에너지를 분리하는 경계로, 때로는 이러한 에너지가 서로 교류하고 합쳐지는 공간으로 표현된다. 이정연 비평가는 2018년 이은욱 개인전 글에서 ‘주체성의 형성과정에서 이어온 세상의 선험적 체계와의 치열한 대화에서 타자를 초청하는 실험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의 우주를 지지했던 작은 수첩은 외부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사각 캔버스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작은 수첩에서 시작한 소우주를 만나는 시간 관객도 각자 만의 눈(EYE)으로 자신의 소우주를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평론_송요비/디렉터, 10AAA

이은욱 개인전 전경,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