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Life

Instant Life

신명준 개인전

INSTANT LIFE

2025. 11. 25 - 12. 13 / 아트스페이스펄

INSTANT LIFE_스테인리스 수건걸이_616x75x16(h)mm_2025
System for system_스테인리스 손잡이, 자작나무합판_104x300x400(h)mm_2025

신명준의 개인전 주제인 ‘인스턴트 라이프(Instant Life)’는 현대 도시인의 주거문화인 아파트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담긴 일곱 점이 전시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작업은 아파트의 ‘베란다’를 상징하는 와 계단을 만들어 설치한 <견고한 단계들>이다. 의 재료는 각 파이프와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했다. 이 설치작의 모티브인 ‘베란다’에 부여한 의미는 ‘머무름’과 ‘울타리’이고, <견고한 단계들>은 아파트의 층을 오르내리는 여덟 개의 계단이다.

전시 공간 설치작 중 전시실에 다섯 점 <①untitled ②Interior ③머무르고/솟아오르고-2ea>, <④견고한 단계들>, 연구실에는 <⑤파편> <⑥System for system> ⑦INSTANT LIFE> 세 점이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설치된 작품과의 관계가 가진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실감각과 심리적 정서 사이의 의미망이다. 특히 (④견고한 단계들) 일곱 계단 중 두개의 계단(바닥 설치) 그리고 개별적인 한단(①untitled)의 설치는 인간의 새로운 발판, 시작에는 끝맺음이 있듯, ‘끝은 곧 시작’이라는 순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종이부시(終而復始)’가 아닐까.

이처럼 이번전시는 시작인 동시에 마지막 퍼즐이기도한 ‘한단’에서 출발한다. 는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어 각각의 감상을 통해 완성된다. “그동안 일상 속 흔한 사물들을 수집하고 관찰하며 이를 설치미술의 형태로 전환해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사물의 수집보다는 ‘목공’이라는 기술적 행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시 공간에서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물리적 구조물에 내재된 시스템과 규칙을 예술적 시각에서 탐구하는 전시임”(작가인터뷰)을 밝힌다.

견고한 단계들_석고, 자작나무합판_1118x2000x3000(h)mm_2025

아파트를 걸어서 올라갈 때 먼저 여덟 개의 계단을 오르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여덟 개의 계단을 더 오르면 한 층이다. 도보로 한발 한발 받쳐주는 계단 열여섯 개가 아파트의 한 층을 이룬다. 신명준은 아파트 수직 통로인 계단에 주목해 <견고한 단계들>이란 이름으로 한 층의 반인 여덟 개의 계단(0.5층)을 설치했다. 그것은 ‘일곱 개의 계단’ 중 ‘두개의 계단’은 바닥에 떨어져 조각나 있고, 나머지 ‘하나의 계단’인 <untitled>는 한 층을 오르기 위해 내딛는 첫 단계처럼 전시공간에 들어서자 바닥에 닿을 듯 벽에 설치되었다. 그것은 마치 시선을 벗어난 듯 낮게 그러나 온전히 홀로 떠 있는 ‘무명’의 단단한 존재감이다.

 

<Interior>는 아파트의 ‘베란다’를 형상화한 입체작업으로 90도 각도의 전시장벽 양면에 걸쳐 설치했다. 이 설치는 이번 전시의 방향성을 실험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한다. 아파트 건축에서 ‘베란다’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으로 가족이나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사적 공간이다. 이는 “건축적인 요소인 베란다가 전시장에 배치되었을 때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착안했다.”(작가노트) 시선을 돌리면 <Interior>와 <견고한 단계들>의 경계를 설정한 좌표처럼 양쪽 벽면에 설치된 ‘문자’와 ‘이미지’ 풍경인 <머무르고, 솟아오르고>를 본다.

 

현대 고층아파트의 경우 계단은 비상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되었다. 작가는 이 계단 하나하나 거푸집을 만들어 석고를 부어서 만들었다. 이처럼 <견고한 단계>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다양한 시선과 생각의 빛으로 더 단단해질 것이다. 특히 고층아파트나 건물의 경우 계단은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단절된 곳이나 다름없다. <Interior>는 나무(합판)와 석고 그리고 스테인리스 막대봉 등의 재료를 결합한 설치로 ‘단절’과 ‘연결’ 또는 사적이거나 공적 공간의 경계를 설정한다.

전시전경 installation view

신명준의 이번 전시 ‘인스턴트 라이프’는 21세기 문화적 변곡점에서 작가적 질문이자 아파트 문화에 대한 상징적 시각화가 아닐까. “실외에서 볼법한 ‘베란다’와 ‘계단’을 실내 전시공간에 설치, 일상적인 건축적 요소지만 전시장에 배치되었을 때는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기 위한 시도”(작가노트)임을 밝힌다. ‘인스턴트 라이프’를 통한 작가적 시선은 도시 생활에서 경험한 현실인식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지점에서 한발 더 다가서면 ‘계단’은 여덟 개의 단으로 설치되었다. 하나 둘 계단을 따라 가던 시선은 간격의 차이 속에서 사라진 계단에 대한 시·지각이 작용하는 가운데 바닥에 떨어져 조각나 있음을 본다. 이 계단을 한참 보고 나니 찰나와 영원의 조각들로 문 앞에 서게 한다.

 

아파트는 각 세대가 독립적인 생활공간으로 이웃과의 소통이 단절되기 쉽다. 이러한 점에서 ‘계단’은 위층과 아래층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유일한 공용공간이자 상호연결성을 가진 소통의 장소다. 그 간격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시선은 하나의 눈이 아닌 다수의 눈들이 만나는 장이다. ‘베란다’가 내부와 외부의 완충 공간이자 사적 장소라면, ‘계단’은 수직이동을 위한 공유공간이다. 이렇듯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사적인 동시에 공적영역으로 이웃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현대 건축기술로 고층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엘리베이터’의 속도도 빨라졌다. 그 속도만큼 아파트의 층수도 높아진다. 일상의 생활공간에 깊이 스민 이 속도의 시대, 아파트의 ‘계단’은 대피공간으로 남는다.

Interior_각파이프, 구조목, 자작나무합판_2012x1006x931(h)mm_2025
견고한 단계들(부분)_석고, 자작나무합판_1118x2000x3000(h)mm_2025

점점 높아지는 고층아파트의 계단은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보다 견고한 단절의 공간이다. 동일한 외관과 구조 다양성이 사라진 인테리어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공간에서의 삶, 이번 전시의 주제인 ‘인스턴트 라이프’에서 작가가 주목한 것은 아파트의 상징적 구조인 ‘베란다’와 ‘계단’이 가진 시스템이었다.

 

“문득 새로운 체제, 즉 시스템(system)을 구축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작업을 위한 시스템을 형성하는 필수요소는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에 작업실에 무심히 쌓여있는 목재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손잡이 그리고 일정한 규칙성을 지닌 내부 구성에 주목하게 되었다.(작업노트) 그리고 이동성과 확장성을 가진 작은 체제의 단위, 반복과 속도가 공존하는 환경, 특정한 법칙 속에서도 유동적으로 변형이 가능한 시스템, 이를 통해 고정된 구조가 아닌,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재조합할 수 있는 공간과 사물의 관계를 탐구하고 싶었다.”(작가와의 대화)

 

이번전시에는 현대인이 느끼는 ‘외롭지만 편리한’ 도시인의 삶, ‘인스턴트 라이프’에 대한 작가적 시선이 자리한다. 이 시선에는 ‘불편해도 행복한’ 삶,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오는지, 전시를 보고 대화를 나누며 함께 만들어 가는 것, 이 겨울 온기 나누는 사유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평론 : 김옥렬(현대미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