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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환이 집중하는 작업은 혼재되고 섞여 있는 것을 수렴해 가는 방식에서 느끼는 흥미로운 발견들이다. 일종의 발견 사물(Found object)이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물체를 전시 공간에 설치해 원래 있는 곳을 벗어나 재-배치(아이디어 생산방식) 함으로써 일상의 사물을 미술의 오브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삶과 예술의 간격이 사라지면서 작가의 아이디어라는 개념미술로 전개되었다.
이렇듯 개념미술은 결과보다 아이디어와 과정의 미술이다. 감상 역시 규정된 틀을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열어가는 과정이다. 감상 없는 창작이 없는 것처럼, 미술에서 독창성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 과거에서부터 가까운 과거의 미술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시각과 깊이 소통할 수 있다.
홍순환은 사물의 흔적에 투영된 시·지각의 빛, 즉 시간이 겹친 얼룩진 곳에서 삶의 온기를 발견한다. 그 빛은 미술로 규정된 선입견을 벗어난 우연성, 즉 ‘나에게 주어진 것’인 동시에 ‘너에게서 온 것’이다. 이는 보는 동시에 감각 역시 가능하게 하는 창작과 감상의 순환, ‘나’ 혹은 ‘너’와의 유연한 관계성이다.
이렇듯 홍순환의 이번 전시 주제인 ‘주어진 것’은 무심한 듯 삶의 가치와 예술의 가치 사이에서 규정지을 수 없는 것, 그 의미가 무엇인지 ‘나에게 주어진 것’, 그 앞에 서게 한다. 이를 통해 박제되지 않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한 지점에 대한 질문, 그 질문을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다.
홍순환은 “지금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드러나지 않고 어떤 틈 사이에 감춰있거나 숨죽이고 있는 것, 그런 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들, 어슴푸레하게 추론하는 것, 예측 가능한 어떤 지점에 대한 설정, 새롭게 자각하는 주체 혹은 어떤 환경에 동화되는 객체 그런 방식이다. 그것은 의도하거나 어떤 절차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위계를 갖지 않고, 낡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이처럼 주어진 것을 보고 선택하는 과정이 재밌어요. 뭐 어떤 근사한 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거든요. 삶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뭔가 발견하게 되면 그때 좀 긴장 상태가 돼요. 순식간에 전환되는 느낌을 받거든요. 물질적인 어떤 상태, 물질은 아니지만 물질적인 어떤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 같아요. 회화에는 분명히 시스템이 있고 어떤 방식도 주어져 있어요, 나는 그것을 어떤 범위 안에서 조율되고 관리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죠.”(홍순환 인터뷰)
이렇듯 작가는 다른 어떤 것을 만들기보다는 관습을 벗어나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통해 상호작용 가능한 것, 그래서 ‘내게 주어진 것’이라는 규정되지 않고 틀에 박혀있지 않은 것을 감각 한다. 수백 수천 개의 똑같은 그릇이라도 세월의 흔적이 주는 무게감은 같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서 왔을까, 어디에서 누구한테 쓰였다가 버려졌을까?” 이번 전시의 주제가 ‘나에게 주어진 것’인 이유다.
글 Text : 김옥렬 Okreal Kim/현대미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