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건예의 이번 개인전은 스물한 번째다. 전시를 앞둔 작가와의 인터뷰는 이전과 달리 은인자중하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전업 작가들처럼 김건예작가 역시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전업 작가로 살아온 팍팍한 삶이었다. 대학졸업 후 13년의 독일유학과 작가활동 그리고 귀국해서 16년간 꾸준히 활동하며 전시를 해왔다. 미술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 온 30년의 삶 속에서 느낀 회환일까. 이번 전시를 앞둔 눈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여운이 깊다.
김건예는 옥상아래 작업실이 있다. 열기로 달구어진 실내를 탈출해 옥상을 자주 오른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산도 변화하고 산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작업실 위층 옥상에 올라 산을 보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감각한다. 복잡한 감정들을 크고 작은 캔버스에 담았다. 가까운 산과 멀리 있는 산의 원근감도 없는 다만 산등성이 따라 반복된 한방향의 붓 결로 간결한 풍경을 그렸다.
옥상에 올라 바라본 산의 풍경이지만 그려진 산의 능선을 표현한 경계가 마치 매끈한 붓질의 경계가 주는 아픈 상처 같다. 능선 따라 펼쳐진 면들은 산에서 느낀 공간적 울림을 붓의 방향을 통해 면과 면의 차이를 만든다. 이 차이는 산 능선의 흐름 따라 아크릴 물감이 건조하기 전에 빠른 필치로 긋고 또 긋는 행위과정이다. 마치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듯 반복된 행위 과정은 살결처럼 붓 결의 흔적이고, 색이 겹치고 붓의 결이 만드는 풍경으로 어쩌면 산에 투영된 고단한 삶을 품은 묵묵한 마음들이다.
작가는 작업과정에서 온몸을 사용해 팔과 손과 붓이 능선의 기울기에 따라 하나가 되어 결도 색도 지워지고 다시 드러나는 과정에서 붓을 놓는다. 이 그림들은 먼저 그려놓은 능선을 의식하고 평면 공간에 붓의 방향과 색이 겹치는 과정에 선이 무너지지 않고 선과 색이 조화롭게 섞일 때 까지 화면을 조율하며 행위를 반복한다.
“능선의 결은 운동감이나 속도감을 나타낸다면, 색은 유사한 색을 반복하기 전에 바탕색에 따라 여러 번 겹칠 때 색의 밝기와 깊이를 조절하는 거죠. 무엇보다 능선을 살리기 위해 자연스러운 선을 위한 행위를 취하기 위해 그 능선 사이사이는 붓의 속도나 방향을 잡아 직선에 가깝게 그리고 있어요.” 작가는 기후변화로 유난히 더웠던 올해 7-8월에 작업을 하면서 물감의 건조가 느린 유화물감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아크릴은 건조가 너무 빠르고, 캔버스가 클수록 신체와 붓이 한 호흡으로 작업하기 어려워 두세 번으로 나누어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 <색과 결의 풍경>에서 보여 지는 몇몇 작품들은 여러 번 겹쳐 칠하더라도 한 번의 붓질처럼 느껴지는 간결함을 얻고자 했다. 이유는 단색을 통해 간결하게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몬드리안이 도시의 풍경을 색과 면으로 단순화 한 것처럼, 김건예는 산등성이를 기준으로 단순화를 시도한 자연의 풍경이 아닐까.
“산 능선을 통해 간결해지기까지는 능선을 숲으로 표현했던 것과 능선을 그린다기 보다 비워둔 것에서 지금의 작업이 되었죠. 시간적으로 2년 가까이 기간에 약간씩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면서 고민하는 과정에서 늘 작은 변화들이 생기죠. 작업을 하면서 고민하고 헤매는 와중에 변화가 만들어 지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천을 접어서 만든 인공적인 산의 형상을 그려 보기도 했었죠.”
김건예는 그동안 회화뿐 아니라 설치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이미지를 최소화한 색과 결을 통해 산의 풍경을 단순화한 간결한 그림으로 전시를 한다. “첩첩 산 중에는 능선이 있잖아요. 이런 능선들 사이에는 공간과 깊이가 있고 그런 부분을 평면회화에 가장 간결하게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이전 <봄>전에서 풍경을 단순화하는 과정을 시도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산과 산 사이의 능선을 비워두는 방식으로 면과 면의 경계를 2차원의 평면으로 보다 강조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