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 낭만적 풍경

박세진 낭만적 풍경

Park Sejin Solo Show

Romantic Landscape

2023. 11. 21 - 12. 8 / 아트스페이스펄

수상한 숲, oil on canvas, .117x91cm, 2023

낭만적 풍경

1.

박세진의 이번 전시 <낭만적 풍경>은 색 빛의 ‘반짝임’으로 시·지각적 감각작용을 일깨운다. ‘반짝임’은 슬픔과 기쁨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번 전시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느끼는 밝은 모습 이면에 내재된 우울한 감정인 슬픔을 승화시킨 반짝임, 이를테면 슬픔을 녹여낸 기쁨으로 어두운 배경 속 색과 형으로 빚은 존재감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몇 번의 만남으로 작품에 관해 대화를 하다보면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삶에 대한 희로애락을 생각하게 된다. 박세진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제주 출장전시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후 가끔 전시장에서 만나면서 작업실 방문도 하게 되고 또 치열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듣게 되면서 이번에 아트스페이스펄 전시에 초대하게 되었다.

박세진의 최근의 주제는 샹들리에나 꽃을 통해 회화적인 색과 형으로 반짝이는 빛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지금은 풍경을 주제로 그만의 색과 형을 찾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전체와 부분의 관계 속에서 미적정서가 작동하는 색 빛으로 풍경을 그린다. 이번 그림에서 보여 지는 그림 속 반짝이는 빛에 대한 표현방식은 번민과 열정으로 힘든 시기를 겪으며 느낀 심리적인 작용으로 시작했다.

untitled.oil on linen.34.8x27.3cm.2023
untitled.oil on linen.34.8x27.3cm.2023

“제가 영국에 있을 때 우울한 감정으로 너무 힘들 때가 있었어요. 그런 마음이 몇 년 동안 지속되니까 저의 긍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눈물이 흘러서 잠에서 깨곤 했어요. 어느 날 너무 힘들어 우연히 친구와 만난 카페에서 샹들리에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크리스탈도 아니고 싸구려 유리로 만든 샹들리에였지만, 그 유리가 빛을 받아 서로를 반사해 밝게 빛을 발하는 것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 순간 굴러다니는 돌도 그만의 존재를 가진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때 저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작가인터뷰)

밝은 모습 이면에는 저마다의 슬픈 그림자를 품고 산다. 특별히 아끼고 사랑한 이들과의 이별로 깊은 슬픔을 겪고 나면 더 단단한 삶으로 성장한다. 누구나 개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모습과 내재된 무게는 달라도 사랑으로 나눈 마음의 온기는 힘이 들 때 더 빛을 발하는 이유다. 박세진 역시 30대라는 청년의 우울 속에서 자신을 사랑했던 이들과 나눈 마음의 온기로 슬픔도 예술로 승화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시전경 2023, 아트스페이스펄

2.

박세진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활동을 통한 밀착체험을 했다. 그의 생생한 경험이 담긴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동시에 깊은 슬픔을 그림으로 승화해 가고 있는 작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박세진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타인의 삶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잠재된 열정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작품에 투영해 나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이 깊으면 슬픔도 더 깊게 느낀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슬픔이 더 깊은 이유일 것이다. 박세진 역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준 이모와의 이별은 마음 깊은 곳 슬픔으로 남았다. 작가의 그림에서 보여 지는 두툼한 터치와 화려한 색의 꽃과 빛을 발하는 샹들리에는 그 자신이 경험한 슬픔을 승화해 가는 색과 빛이다. ‘꽃은 소우주잖아요.’라고 말하는 그의 그림들 중에서 큰 캔버스를 화려한 꽃으로 가득 채워 그리움을 꽃으로 승화시킨 마음을 본다.

어린 시절부터 저녁노을을 보면서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는 박세진의 풍부한 감성은 반짝임에는 즐거움도 있지만 동시에 슬픔도 함께했다고 회고한다. 다락방에 올라가 볼펜과 색연필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경험이 지금의 삶을 살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꽃을 보고 우주를 생각했다는 박세진은 현실의 모든 거시적 존재들도 결국은 원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서 거시세계 또한 미시세계의 성질에 영향을 받는다는 양자역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이후 우주에 대한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우리의 삶은 미시적으로는 이곳으로부터, 거시적으로는 머나먼 우주 은하계의 광활함과 끝을 알 수 없는 오묘한 빛을 뿜는 존재의 반짝임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유한한 삶이라는 허무함이나 미지의 풍경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풍경을 색과 빛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이 <낭만적인 풍경>은 ‘존재에 대한 상상’이 더해진 색 빛을 그린 풍경으로 ‘존재의 반짝임’이다. 작가는 이를 “우주의 고요한 바다를 건너온 태양의 빛이 대기를 뚫고 대지에 내려와 길가의 작은 유리조각과 냇가의 수면 위 그리고 꽃과 나뭇잎뿐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과 곤충의 껍질 등 온갖 것에 닿아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우주는 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우주라는 것”을 담고자 했다.
이번 전시작 중에서 배경을 어두운 톤으로 그리고 나서 색의 농도에 따라 붓 터치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그린 풍경에는 ‘무인도’ 혹은 ‘신선도’처럼 신비감을 더하기도 하고, 또 다른 그림은 자연의 빛과 인공적인 빛이 밤하늘을 수놓은 꿈꾸는 색 빛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Untitled.116.8x91cm.oil on canvas.2023
untitled.oil & acrylic on linen.34.8x27.3cm.2023

3.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미술 전공이 아닌 문학이나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하고 스터디를 하고 영화에 대한 깊은 관심이 예술에 대한 폭넓은 생각으로 자유롭게 했을 것이다. 대학이나 대학원에 다닐 때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시기의 작업은 현실과 초-현실이 교차하는 심리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그림과 판화작업이었다.

박세진은 자신의 성격에 맞는 상황이 만들어 지면 잠재력을 발휘하는 기질이 비교적 강하게 작용하는 작가다. 그래서 인도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또 영국에서는 유학도 이민도 아닌 삶으로 여러 해를 살면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한계와 잠재력을 발견하는 삶을 살았다. 2015년 한국에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비로소 첫 개인전(2018년)을 할 수 있었다. 이후 2년마다 차곡차곡 그린 그림으로 그룹전과 개인전을 해왔다. <낭만적 풍경>은 박세진의 네 번째 개인전이다.
올해 전시는 작업의 주제나 기법 그리고 완성도 면에서 이전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시기의 전시다. 지금 작가는 유목적인 삶이 아닌 정착생활을 하면서 과거를 현재에 녹여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삶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점에 와 있는 이번 개인전인 <낭만적 풍경>은 시·지각을 확장해 가는 새로운 삶의 풍경이다. 이 풍경을 통해 현대인의 쓸쓸함과 이상 사이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나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은 50호에서 150호 8점, 20~30호 4점, 소품 11점이 전시된다.

Text : 김옥렬(현대미술연구소 대표)

전시전경 2023, 아트스페이스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