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12wed ~ 6.12sat
김건예 Kim Geonye
아트스페이스 펄의 초대로 이번에 아홉 번째의 개인전을 갖는 김건예의 전시 주제는 ‘그리드(Grid), 다층적 의미(multilateral meaning)의 관계망(Network of a Relation)’이다. 그리드는 바둑판 형태의 수평 수직으로 분할되는 격자를 이르는 말이다. 미술에서의 그리드는 1960년대 추상적이고 중성적인 구조 혹은 논리와 조화 그리고 균형과 통일성을 보여주는 형식적 구조로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미적 순수성 내지 미적 자율성을 위해 이루어진 하나의 미적 형식을 일컫는 용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김건예의 그리드는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으로 현대의 시스템, 즉 그리드에 살고 있는 현대 도시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구조화 되어 있는 현대의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그리드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아파트의 구조나 거리의 보도블록 그리고 도서관과 사무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드’는 도시의 유형적인 특성이다. 이런 도시의 유형적 특성을 풀어내는 김건예의 방식은 익명으로 존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렇듯 작가의 회화적 시선은 현대인의 삶의 구조, 이중적이고 암시적인 사회적 관계를 익명의 인물(모델)을 통해 그 이면에 내재한 현대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회화적 형식으로 투사해 내고 있다.
현대인의 삶의 구조를 바라보는 작가의 회화적 방식인 ‘그리드,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상징이자 은유다. 현대인에 대한 상징과 은유가 드러나는 그의 회화적 방식은 칼로 자른 듯 뚜렷한 인물의 윤곽선과 그물망 속에 드리워진 인물의 볼륨이라는 이중성으로 이루어진다. 인물을 감싸고 있는 섬세한 결의 그물망은 다시 붓이 지나간 흔적 따라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그리드를 이루는 방식으로 ‘그물망’과 ‘그리드’의 교차를 통해 하나이면서 여럿인 의미의 층을 형성한다.
그것은 “자아와 타자, 안과 밖, 정신과 육체,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만나 하나의 ‘회화적 그물망’을 통해 생성 변화하는 유기적 생명인 나와 너의 관계가 갖는 회화적 시선으로 마주한다. 어쩌면 이러한 작가의 회화적 시선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는 지점으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의 회화적 표현이 아닐까.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라는 원효대사의 화쟁(和諍)사상처럼, 김건예의 ‘회화적 그물망’은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고 반영하는 관계에 대한 인드라망의 표현일 것이다.”(김옥렬-개인전 평론문인 ‘회화적 그물망’에서 인용)
작가의 이전 전시에서 보여주었던 ‘회화적 그물망’ 연작은 기법적 요소와 내용이 육체적인 행위의 과정과 심리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시각적 확장뿐 아니라, 심리적 확장을 통해 몸과 마음의 관계도 그물망 속에 포착하고자 했다. 이처럼, ‘회화적 그물망’이 아련한 그리움이 담긴 회화적 열망으로 관조적인 표현이 두드러졌다면, 이번 아트스페이스 펄에서의 개인전에서는 형상과 배경의 관계가 ‘그물망’과 ‘그리드’의 교차 속에서 색과 구성적 화면의 변화를 통해 도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익명의 현대인을 바라보는 김건예의 회화적 방식은 ‘그물망’에서 ‘그리드’로 혹은 ‘그리드’와 ‘그물망’이 교차하면서 기계적인 효과보다는 섬세한 손의 떨림과 붓의 프로세스가 종횡으로 겹치며 팽팽한 화면을 구성한다. 팽팽한 화면을 구성하는 두 가지의 방식인 형상과 배경사이에는 익명의 현대인이 놓여있다. 이 익명의 현대인은 직물의 표면과도 같은 ‘그물망’과 도시의 유형적 특성이기도 한 ‘그리드’가 서로 교차하면서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을 형성한다.
예컨대, 이번 전시작인 (Grid-M)과 (Grid-W)의 경우는 인물을 배경으로 좌우 두 가지의 색•면으로 구성된 인물에 두 가지의 구성방식, 이를테면 ‘그물망’이 겹쳐지면서 ‘그리드’의 효과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회화적 효과는 현대인의 삶의 구조를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이라는 회화적 언어로 시각화하는 김건예의 독창성이다. 이같은 그의 독창성은 흔히 한국의 문살무늬 또는 정(井)자 무늬라고 일컫는 격자무늬(cross stripes)에서부터 현대도시의 유형적 특성까지 포괄하는 형식적 요소가 전제되어 있다.
나아가 미적 순수성 내지 자율성을 위해 추상적이고 중성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그리드’는 이 작가에게 있어 추상과 구상의 경계, 동양과 서양의 경계, 정신과 육체의 경계를 횡단하는 관계망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망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대의 체계가 그리드를 통해 형상화된 회화적 표상이다. 이러한 표상은 김건예의 회화적 성찰이 담긴 ‘그리드,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으로 (Grid_YG), (Grid-M), (Grid-W), (Grid-W2), (Grid-R)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그물망’과 ‘그리드’가 김건예의 작품에 있어 형식적 요소이자 형식 너머의 의미를 견인하는 상생(균형)과 접속(소통)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의 형식과 내용 그리고 형상과 배경을 연결하는 고리처럼 서로 교차하면서 현대인의 상징과 시스템에 대한 은유를 담아 익명의 현대인으로 세상과의 네트워크를 열어가고자 하는 열망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 아닐까. 익명의 현대인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모두가 접속해서 만나게 되는, 너인 동시에 나인 것이다. ‘그리드,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이 갖는 네트워크 시스템이 땅속으로 뻗어서 자라나는 땅속줄기처럼, 줄기들의 모든 점이 열려있어 다른 줄기가 접속 될 수 있듯이 ‘그리드, 다층적 의미의 관계망’에 담긴 작가의 회화적 열망에 누구나 접속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김옥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