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철 개인전 / SCENE DE BALLET

황우철 개인전 / SCENE DE BALLET

Hwang Ouchul Solo Exhibition

SCENE DE BALLET

2023. 2. 7 - 19

A girl with violin 20220423, oil on canvas, 120x100cm, 2022

중국 상해에서 글(시와 시나리오)과 그림(회화)을 기반으로 연구하면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황우철은 현재 중국 상해 교통대소속으로 교육과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에 발표한 장편 영화 <타카오 댄서 Takao Dancer>는 동경영화제에서 월드 포커스 상을 받았으며, 단편 영화인 <빈센트 Vincent>는 불가리아 국제 헤리티지 영화제 2016년 영화 실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서울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연극반 동아리 활동을 했던 황우철의 예술적 활동영역은 미국유학을 통해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 영상에 새롭게 눈을 뜬다. “연극은 인생의 모사(模寫)요, 관습의 거울이요, 진리의 반영,”이라고 한 키케로의 말처럼, 황우철에게 있어서 예술은 그가 배우며 살아가는 장소를 몸소 체험한 그 자신의 에토스와 파토스의 반영이다. 황우철의 미국 시기의 활동은 30살 이전의 국내와 이후의 미국의 문화적 차이 속에서 자신의 신체감각을 끌어 올려 체화된 서체의 선(에토스)과 행위 하는 몸(파토스), 그 사이를 감각하는 파토스의 장이었다.

황우철은 2000년 이후 싱가폴(난양대)에서 일 년간의 교수생활과 일본 와세다 대학(영화과 박사과정), 중국의 항주(절강공업대학 애니메이션 영화과 교수) 이후 지금은 상해 교통대에서 연구와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대학 졸업이후 황작가는 대부분의 삶을 유목민처럼 짧게는 일 년 길게는 5~8년씩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문화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어쩌면 황우철의 삶과 예술은 그의 꿈을 실현해 가기위한 노정에서 예술적 도반(道伴)을 만날 때, 에토스에 잠재된 파토스가 살아 날 때, 그 삶의 순간 말은 시가 되고 눈이 가 닿은 곳은 그림이 된다.

이처럼 황작가의 글과 그림 그리고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는 그의 삶은 그 자신이 시시각각 호흡했던 시화(詩畫)의 감수성을 품고 탄생한다. 지난해(2022년)는 시화집인 <화부>를 e-북으로 출간했다. 작가는 자신을 ‘그림 짓는 농부’ 즉 ‘화부(畫夫)’라고 한다. 이 책은 매일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것을 모아서 묶은 황우철의 화문집이다. 황작가의 시와 그림의 감수성을 따라 읽고 보는 감상의 순간 마주하는 것은 실존의 순간을 예술로 호흡하는 삶의 거울이다. 2023년 황작의 올해의 전시 역시 일상의 한 순간에 느낀 감흥을 그만의 회화적 방식으로 시각화한 <발레의 정경>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어 놓는다.

발레의 정경 Scène de ballet’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50호 두점과 60호 12점의 회화작품 14점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발레를 하고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와 작가의 감각을 통해 들리는 음악과 보이는 풍경이 붓끝을 통해 <발레의 정경>으로 탄생했다. 이번에 전시된 열네 점의 신작은 코로나를 벗어나 잔잔한 희망을 노래하는 작가의 회화적 호흡이다. 그림은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정서가 담긴 삶의 거울이기에 결국 “미술은 화가의 눈을 통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시각적 쾌가 결합되면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술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죠.”(작가인터뷰)

“발레의 정경”을 주제로 전시하는 작품에 대해서 작가와 나눈 얘기를 글로 소개한다. 그림을 보면서 나눈 얘기는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Lovers, oil on linen, 120x90cm, 2020

이 그림은 연인이 대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장소는 황포강(黃浦江황푸강)이 흘러 주자각(朱家角주쟈쟈오)이라는 마을로 흘러가는데, 마을에 있는 고촌의 옛 방식으로 축조된 돌로 쌓은 다리 아래는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도 있고 낚시하는 사람도 있다. <연인>은 이곳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으로 상해에서 살아가면서 피부로 느끼고 마음이 가 닿는 것에 대한 풍경이다.

Sking20220323, oil on linen, 120x100cm, 2022
스키타는 사람들 20220324, oil on linen, 120x100cm, 2022

스키타는 사람들, oil on linen, 120x100cm x2, 2022.
이 그림은 같은 제목 두 점이 전시된 스키장 풍경이다.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스키를 타다가 ‘넘어진 사람이 있는 풍경’과 ‘스키장 풍경’이 있다. 이 스키장은 상해에서 4-5시간 차로이동하면 절강성 쪽에 있는 조그마한 스키장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산책길, oil on linen, 90x120cm, 2020.

코로나로 집에만 있다가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 전동차를 타고 조용한 곳을 달리며 답답한 곳을 벗어난 순간의 풍경이다. 이풍경은 코로나로 봉쇄된 상황에서 몸이 갇혀 있다는 것 보다 생각이 갇혀버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경험을 그렸다. 갇힌 것에서 벗어나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시고 싶은 욕구를 담고자 했던 풍경이다. 황량하지만 시원한 풍경에는 거대한 철탑들이 나무 가로수처럼 하늘을 향해 서 있고 그 길을 전동차를 타고 달린다.

Bike Riding, oil on linen, 90x120cm, 2020

화부, oil on linen, 100x120cm, 2021.
철탑이 지나가는 가을 들녘에서 추수를 하는 풍경이다. 추수하는 농부와 추수하는 풍경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부를 함께 그려졌다. 이 풍성한 가을풍경에서 오른쪽 전경에는 옥수수 나뭇잎이 푸르른 깃발처럼 휘날리고 강아지들도 뛰어다니고 철탑에는 참새들이 앉아 있다.
“가을 들녘에 나가 추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농부의 정성이 대단해 보였을 뿐 아니라, 하루 동안 추수하는 양이 굉장히 많았던 것에 놀랐다. 농부가 추수에 들이는 땀과 정성을 보면서 들녘에 나가서 ‘그림 짓는’ 화가의 마음을 담고자 그린 풍경이 <화부>다.”

A Painter, oil on linen, 100x120cm, 2021

소녀와 바이올린_연작, oil on linen, 120x100cm, 2021
“이 그림은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소녀를 그린 그림이다. 바이올린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같은 곡이라고 하더라도 표정이 다르고 소리도 다르다. 그래서 ‘발레 곡’을 연습하는 풍경을 보면서 기록하듯이 그림을 통해 그 느낌을 담았다. 발레를 위한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새가 날거나 푸른 말을 타고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음악이 흐르는 듯 연작으로 그렸다. 어떤 그림은 추상적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기도 하면서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소녀의 모습을 그렸다.”
“그것은 마치 새가 날 듯 공간을 가득 감싸면서 놀고 춤추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아서 그 새를 표현하거나 어떤 때는 말을 타고 연주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느낌들이 시각적인 이미지로 그려진 것이죠. 그래서 바이올린 연주 소리를 들으면서 저의 마음속에서 어떤 때는 시적이기도 하고, 또는 약간 좀 거칠기도 하다가 어떤 소리는 굉장히 무겁다가도 잔잔하게 들리는 그런 소리들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그려보려고 했습니다.”(황우철)

이처럼 소리를 색과 형으로 담고자 하는 시도는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했다. 황우철 작가의 <소녀와 비이올린>은 ‘발레를 위한 바이올린’ 곡을 연습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공감각적 감흥을 캔버스에 담았다. 작가가 감각하는 연주자의 모습과 소리가 캔버스로 옮겨지면서 보고 듣는 이미지와 소리가 선과 색을 통해 시·청각적 울림을 시각화했다.

Ballet girls with Blue Horse, oil on linen, 2021

발레소녀와 청색 말, oil on linen, 100x120cm, 2021

발레 그림이 여러 개가 있는데, “학생들이 발레 연습하는 것을 보면 파란 말을 타고 누군가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요. 발레 연습할 때 항상 음악을 틀거든요. 바이올린 곡이나 아니면 오케스트라 연주가 나오고 뒤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그런 어떤 일종의 환청처럼, 환시가 떠올라요. 이 그림은 화가의 눈으로 바라본 발레 연습장면입니다. 발레 하는 소녀들이 뛰거나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는데, 그 너머에 이런 세계가 보이는 거죠.” 이처럼 화가는 현실의 풍경을 보고 마음이 가 닿는 그림으로 번안한다. 황우철의 경우 눈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푸른 말을 타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되어 시공을 초월해 동화해 가는 그림이다.
“청색 말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말 자체도 상상이고, 그 말을 거꾸로 타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것도 상상으로 가능한 것이죠. 어떻게 보면 모티브는 현실 세계,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얻었지만 실제 그림으로 옮겨질 때는 상상과 그림이 뒤섞여 있는 거죠.” 작가의 말처럼, 이 그림은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하나의 공간에 있어 몽환적이기도 하고, 또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생각이 상상을 통해 시각화된다. 이처럼 그림은 볼 수 없는 세계를 시각화 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것은 시적 회화가 되어 저마다의 상상력을 열어주는 창이 되기도 한다.
“발레하는 소녀들이 입고 있는 ‘투투’라는 발레복은 하얀 망사로 된 옷인데, 발레 그림은 드가(Edgar Degas,1834-1917년)가 아주 잘 표현했었지요. 저는 ‘발레하는 소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을 많이 했었죠. <발레소녀와 청색 말>의 기본적인 표현은 인물 중심으로 강하게 그림자를 넣고 옷은 바느질을 하듯 정성스럽게 한 점 한 점 터치들로 표현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점묘처럼 작은 터치를 활용한 그림으로 보인다. 시각적인 효과와 공간적인 효과를 굉장히 잘 표현한 그림이다.

<소녀와 바이올린> 연작 중에서 보다 추상화된 몇 작품은 공간적인 구성뿐 아니라 선적인 구성방식 그리고 색채효과도 다른 방식으로 그렸다. 형상보다 공간적 효과를 회화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소녀와 바이올린>의 경우는 마치 다빈치의 공기원근법(Sfumato)처럼, 형과 색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그려 놓았다. <소녀와 바이올린>시리즈의 다른 그림과 어떤 차이를 만들고자 했는지요?
“이 주제 자체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들이 많이 가미가 된 거죠.” 그래선지 이 그림에선 굉장히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마치 시각적 선율들, 이미지들이 앞으로 다가왔다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흐릿한 형태로 신비감을 갖게도 하고, 캔버스 안에서 깊이가 있어 다양한 소리들이 시각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입술무늬 와인화병과 꽃, 100x120cm, 2021
“이 그림 뒤의 배경은 저희 집 벽에 걸린 그림이에요. 제가 쓴 시나리오가 있는 큰 작품인데 화병과 함께 그려진 글 내용은 ‘나를 떠나지 마세요. 떠나지 않는다고 내게 약속해요. 저를 보호해 주고 더 사랑해 주실 거죠.’(Don’t leave me. Please don’t leave, promise me. You will protect me and you will love me more?)라는 연인들의 대화인데 유리병 뒤의 비친 속의 배경이죠. 이 병은 직접사서 투명한 와인 병에 입술을 그리고 또 꽃을 사서 꽂아두고 유리병 너머에 비친 붉은색 글은 ‘I love you’라고 쓰여 있고, 오른 쪽에는 슈베르트 악보 위에 메트로놈(metronome)을 그렸습니다. 피아노 위에 이 정물을 올려놓고 그린 거죠.”
이 그림에서 메트로놈이 옆으로 이동해 있는 부분이 정물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 같다. 그리고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정물이 집 벽에 걸린 작품의 배경과 어울려 그림 속의 정물 하나하나가 스토리를 가지고 그만의 존재감으로 살아난다. 마치 물건과 물건 사이라든가 꽃과 꽃 사이가 작가의 손길과 마음 닿는 곳에서 그려지는 그림이라 감상의 시선까지 가 닿는다.

용무늬 다기화병과 꽃, oil on linen, 100x120cm, 2022

“이 그림은 차 주전자(Tea pot)에 생화를 꽂아서 그린 정물화죠. 황토주전자를 사서 그 위에 여의주처럼 용을 그렸어요. 중국인들은 새해가 되면 집 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봉황과 용이 있는 그릇에 화려한 색들의 꽃을 꽂아 둡니다. 액을 쫓아 집을 지켜주도록 꽃을 만발하게 장식을 합니다. 설 풍경 중의 하나죠. <용무늬 다기화병과 꽃>은 새해가 되면 ‘액을 쫓고 복을 바라는 새해맞이를 위한 정물화죠.” 황작가는 매일매일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소한 풍경에 닮긴 일상의 연대기를 그리기 위해서는 사물이나 풍경에 대한 관찰과 재료와 기법 등 회화적 효과를 위한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아트스페이스펄 새해 첫 전시로 <발레의 정경>이 포문을 여니, 전시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액은 사라지고 복이 깃드는 한해가 될 것 같은 마음이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현대미술연구소 김옥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