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지평

회화의 지평

강민영 권기철 정태경

회화의 지평

2023. 9. 11 - 9. 27 / ARTPURL.U

김옥렬/현대미술연구소 대표

이번 아트펄유(Art PURL.U) ‘회화의 지평(The prospect of painting)’은 개관전 1부(Imagine) 2부(Point to Point) 전시 이후 첫 기획전의 주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강민영, 권기철, 정태경 이렇게 3인으로 회화가 가진 표현과 변화 그리고 그 의미를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시간이다.

아트펄유 전시 주제인 ‘회화의 지평’, 즉 전망에 대한 주제가 갖는 의미는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미술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후 화가들은 새로운 주제와 방법을 찾아 야외로 나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포착했던 인상주의 회화를 탄생시켰다. 인상주의 회화 이후 2차원의 평면인 캔버스에는 시대적 변화를 감각하는 독창적인 주제와 기법으로 ‘생각의 창’이 되었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미술은 ‘열린 창문’의 역할을 했다. 그림으로 그린 열린 창문이란 원근법의 발견이었다. 이 기법은 2차원의 공간에 구현하는 착시기법으로 3차원의 공간묘사를 위해 그림의 표면에 붓 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붓 자국은 닫힌 창문 즉 불투명성이 되기 때문에 붓 터치에서 발생하는 물감의 물성은 환영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열린 창문’으로서의 회화는 시각적 매개방식을 위한 눈속임 회화(Trompe L’oeil)라는 의미였다. 이는 착시현상으로 그림을 마치 착각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 속임수 기법을 의미한다. 서양의 미술사에서 현재까지 가장 유명한 눈속임 회화라면 <모나리자>일 것이다. 이 그림은 르네상스시대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명인 다빈치의 그림으로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초상화다.

exhibition view, 2023

<모나리자>는 단지 눈속임 그림만이 아닌 다빈치라는 천재화가의 유명세와 그에 따른 역사적 스토리가 결합되면서 초상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생생한 재현’의 사실적인 회화에 현실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미술이 빛으로 그리는 그림인 사진, 즉 다게레오타입 은판(silvered  plate)사진의 탄생은 ‘열린 창문’의 역할을 하던 미술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19세기 중반 사진기 발명 이후 붓으로 그린 화가의 그림을 사진이 대신하면서 시작된 변화였다.

사진은 회화의 변화를 가속화 시켰다.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 미술이 인상주의 회화였다. 이 변화를 향해 화가들은 이젤과 물감박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을 화폭에 담았다. 그 빛의 변화만큼 회화는 새로운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그것은 삶과 풍경을 보는 화가들의 시선과 그 시선에 따른 그림의 변화였다. 자연의 빛 속에서 보는 나무도 건물도 거리의 인물도 햇살 속에 녹아들듯 화가의 붓은 시시각각 빛의 변화를 색으로 포착하면서 캔버스 위에는 형과 색이 품은 빛으로 지각변동이 시작 되었다.

이 지각변동 이후 미술가들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현실을 다양한 주제와 기법으로 상상과 독창성을 발휘하는 길로 향했다.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인 지금의 미술은 디지털아트로 현실보다 더 생생하고 현란한 색과 빛으로 상상을 시각화하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인의 삶에서 필수품이 된 개인용 휴대폰에 내장된 카메라의 눈은 언제 어디서나 순간포착이 가능하다. 고화질로 저장된 이미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온라인 공유가 일상인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이미지 과잉시대에 미술을 통한 ‘회화의 지평’이란 무엇인지, 이 첨단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떤 의미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의미망 속에서 미술의 눈이 보고 감각한 회화적 감성이 담긴 <회화의 지평>전을 열어 놓는다. 이 전시에 참여한 3인의 화가인 강민영, 권기철, 정태경의 회화적 감성이 보고 느낀 그림을 통해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The Island 193.9 x130.3cm oil on canvas 2011
loser 145.5X112.1cm Oil on canvas 2017
The Island 72.7X50.0cm oil on canvas 2011

강민영 우포늪을 보는 회화적 시선

강민영의 그림은 첨단 디지털 시대에 유화물감이 발명되고 ‘열린 창문’의 역할을 했던 회화의 시대로 들어간다. 이 변화의 시대에 ‘회화의 지평’을 열어가는 강민영의 시선이 가 닿는 곳, 자연의 풍경을 찾아 새로운 창으로 들어가는 시각, 즉 작가의 눈으로 보고 그림으로 그리는 회화의 길이다. 그 길은 미술이 가진 시지각적 감각을 기반으로 오염되지 않는 우포늪과 화전 농업에 의해 만들어진 해발 팔백 고지인 화엄 늪을 찾아 ‘닫힌 창’을 열어 자연 속에 스며든다. 강민영이 열어 놓은 창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래된 미래를 향한 자연의 풍경이자, 그 풍경 속 수많은 풀들은 자연에 투영된 인간의 모습으로 새벽안개가 걷히는 시간 풀잎 하나하나에 깃든 묵묵한 존재감이다.

The Islnad 116.8X80.3 cm Oil on canvas 2013

권기철 – ‘어이쿠

어이쿠는 기쁨이나 슬픔 그리고 놀라움 등의 감정을 나타내는 감탄사다. 권기철의 회화에서 ‘어이쿠’는 청각적인 소리와 음악에 대한 회화적 표현의 상징적인 요소다. 그래서 권기철의 회화는 선과 색을 통한 시청각적 울림이 담겨있다. 현대인의 삶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차고 넘친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의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의 결들이 권기철의 회화적 선과 색으로 환원된 ‘어이쿠’로 이는 그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이 투영된 몸짓 회화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마치 긋고 뿌리는 먹과 물감의 강약이 음악 연주법인 스타카토와 레가토에서처럼 선과 색으로 악기를 연주하듯 시각적 울림이 있다. 권기철의 ‘어이쿠’시리즈는 마치 선과 색으로 그린 시각적 선율로 보이고 들리는 회화다.

Eoiku 어이쿠, 193.9x130.3cm, Acrylic on Canvas, 2022
Eoiku 어이쿠, 100x80.3cm, Acrylic on Canvas, 2023
Eoiku 어이쿠, 100x80.3cm, Acrylic on Canvas, 2023

정태경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회화의 지평>전에 전시된 신작 다섯 점의 제목이다. 정태경의 그림의 제목에 ‘나는 집으로 간다’라거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집을 시리즈로 많은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의 이 같은 회화적 주제는 그 어떤 답을 찾아가는 노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회화적인 질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태경의 회화에서 ‘집’에 대한 의미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시와 글을 잘 쓰는 정태경의 그림에는 시적 감성이 곳곳에 스며있다. 이번 전시 주제어인 ‘집’ 역시 은유적인 시적인 그림이다. 집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기도 하지만 화가인 정태경의 ‘집’은 어쩌면 이상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정태경은 그림도 잘 그린다. 언제나 궁핍한 현실 속에서도 그는 예술을 사랑하는 ‘나는 화가다’인 삶을 산다.

정태경_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36.5x122cm, Acrylic, Oilstick on canvas, 2023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22x136.5cm, Acrylic, Oilstick on canvas, 2023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22x136.5cm, Acrylic, Oilstick on canvas, 2023
exhibition view,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