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범 개인전 – 구의 정면 The face of sphere
Untitled_Mixed media_62x72x50cm_2017

김명범 개인전 – 구의 정면 The face of sphere

2017. 3. 15 wed ~ 4. 14 fri
김명범 Myeongbeom Kim

Untitled_Mixed media_62x72x50cm_2017

구의 정면 The face of sphere

김명범(MyeongBeom Kim)의 ‘구의 정면’전은 “둥근 공은 정면이 없다”는 전제가 담겨있다. 이번 전시에서 김명범작가에게 ‘정면’이 갖는 의미는 작품에 대한 그의 태도와 인식이 반영된 중요한 주제이다. 특히, 정면에 대한 시각은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변화해온 역사적 의미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주제인 ‘구의 정면’은 창작을 하면서 갖게 되는 정면에 대한 시각, 마주보는 것, 마주보게 하는 것, 마주 보고 싶은 것과 정면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무엇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누군가 보고 느끼는 감상의 지점, 같지만 다른 느낌을 발견하는 지점, 늘 같았던 것이 때와 장소 혹은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그곳이 바로 정면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시각적 인지 방식은 일상의 풍경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도 그렇지만, 특히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얼굴을 정면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마주보기란, 대체로 사람과 사람 간에 서로 마주하고 바라보며 혹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도 우리는 눈만 뜨면 그 무엇을 본다. 그것이 정면이라거나 측면이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내가 서있고 또 길을 걷거나 일을 하는 공간에서 보이는 곳을 그냥 무심히 바라본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보거나 지나치는 모든 풍경에는 그만의 얼굴이 있다. 사과하나 컵 하나 나무 한그루 그리고 집과 사람들로 오가는 주거 단지와 도시의 빌딩 숲 등등 무수히 많은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아주 세심히 관찰해야 보이는 것이 있다.

김명범의 작품의 출발은 본다는 것, 보고 그린다는 것, 보고 그리고 또 입체로 만든다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작품의 정면, 일상에서 무심하게 시선이 머무는 곳, 마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정면성’이라는 것, 정면을 응시하는 그림과 그 정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건에 대한 정면성, 누가 어떤 위치에서 그것을 정면이라고 정하는가, 측면과 정면의 교차점 속에서 정면이 가진 시각이 작품을 이해하는 폭을 한정시키는 점은 없을까?”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구한다. 이번 전시가 바로 그에 대한 답이자, 그 답 역시 다른 질문을 낳는 순환의 구조를 갖게 한다.

이런 질문은 어쩌면 시각이미지를 기본으로 하는 미술의 오랜 질문이기도 하고 또 여전히 계속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 사이, 그 깊은 심연 혹은 질곡을 연결하는 것은 어쩌면 미술의 운명이자 역할이기 때문이다. 미술은 오랜 역사 속에서 시대마다 문화마다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영원성을 중요시한 고대 이집트 미술은 엄격한 규칙을 가진 ‘정면성의 법칙’으로 부조나 벽화를 그렸다. 머리는 측면이면서 눈은 정면을 보는 것으로 그려져 있고, 어깨와 가슴은 정면으로 그려 인체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을 정면으로 보이게 했다.

이집트의 정면성이 긴 시간여행을 통해 새로운 기법과 배경 속에서 20세기 초의 입체주의 미술로 재탄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긴 세월 속에서도 미술은 여전히 2차원의 평면에 대한 고민과 질문으로 시공간을 펼쳤다가 다시 접고 또 다른 지평을 열기위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겹쳐지는 미술의 궤적 속에서 김명범의 ‘구의 정면’은 여러 시점을 하나의 평면에 그렸던 입체주의 회화에 대한 답변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입체주의 회화가 여러 방향(각각의 정면)에서 본 것을 하나의 면에 종합하는 것이라면, 조각은 그 자체로 실재하는 입체이지만 여전히 위치에 따라 한 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명범은 2차원의 평면이 아닌, 3차원의 입체조각도 시각에 따라 정면이 있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부정을 통해 다차원으로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을 ‘구의 정면’으로 제시한다.

이렇듯 김명범의 ‘구의 정면’은 정면이 없다는 것으로 하나하나가 모두 정면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수의 정면이거나 정면이 없고 여러 방향에서 보는 전체가 정면이 되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명범의 ‘구의 정면’은 역설적이게도 정면의 부정을 통해 ‘무의 정면’, 정면 없는 것에 대한 3차원 혹은 다차원에 대한 전제를 포함한다. 그것은 피카소가 ‘입체주의는 눈과 마음이 지각한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했던 20세기 초의 회화적 혁신을 떠올리게 한다. 즉 2차원의 평면에 다시점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던 입체주의 회화, 그 시·공간에 대한 확장된 심리적 감성의 시선이다.

김명범의 이번 전시 주제인 ‘구의 정면’은 미술의 근원적인 질문 속으로 들어가서 스스로 에게 질문하고 작가의 상상을 발현시켜 그만의 방식으로 투영해 놓은 ‘구의 정면’, 즉 정면이 없는 구의 의미를 통해 새로운 나 혹은 너를 만나는 지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이번 전시작품에 담긴 의미는 형식적으로는 입체에 대한 질문을 담고, 그 내용은 심리적 요소의 확장에 있다.

미술에 있어서 그린다는 행위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면서 중요한 행위이다. 그래서 2차원의 평면에 그려진 그림은 어느 시대나 가장 진부하면서도 가장 실험적인 요소가 공존한다. 그것은 하나의 시점에서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과 시간성을 정지된 화면에 표현하는 방법 등 한정된 공간에 수많은 상상력으로 주제와 기법 그리고 재료실험의 장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중요성이 입증된다.

또한 이번에 전시되는 신작은 작품의 내적 관계, 작품과 작품이 놓여지는 장소 그리고 그것을 보는 시선에 따라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을 끌어내는 관계를 설정한다.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사용한 데페이즈망이 김명범의 작품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투영되어 있음을 본다. 예를 들면, < Untitled>연작 중에서 풍선에 뿔이 달린 작품처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일상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상상력의 출발은 흔히 보거나 알고 있는 이미지의 병치 혹은 결합이다.

그것은 자연과 인공,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작은 것과 큰 것, 빈 것과 가득한 것의 대비와 병치 그리고 삽과 지팡이, 새장과 풍선, 연필과 화살, 밧줄과 나뭇가지, 초와 나무, 풍선과 배꼽처럼 결합되어 원래 이미지와의 충돌이 주는 진폭으로 섬세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어항과 바다처럼 낯선 결합으로 상상력을 일깨운다. 이처럼 김명범의 이번 작품의 이미지는 선입견을 해방시켜 잠재된 의식을 열어 놓는 접점에서 빛(투영)을 발한다. 그 빛은 정면이 없는 것, 어디서 보더라도 가 닿는 빛, 빛을 품은 실재이다. 그것은 형태의 유사성과 차이 속에서 서로를 품고 둘인 하나가 되어 보는 이의 마음속에 파고든다. 그곳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무의식을 일깨운다. ‘구의 정면’은 선입견을 벗기고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창, 자연과 도시, 사물과 생명을 연결하는 너와 나 사이에서 투영하는 감성생태의 확장된 장이다.

글 / 김옥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