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 배주은 2인전

박세진 배주은 2인전

박세진, 배주은 2인전 - ‘색빛잔상’ · ‘검은고요’

2026. 4. 21 - 5. 10 아트스페이스펄

‘색빛잔상’과 ‘검은고요’는 박세진과 배주은의 ‘2인전’에 대한 주제어로 서로 다른 색과 형이 감상의 시선에 와 닿는 시·지각적 의미를 함축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아 온 터라 익히 알지는 못하지만 성격이나 보여지는 모습에서 두 작가의 공통점이 한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두 작가가 음악적 취향을 깊이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림 스타일(시각적 언어)뿐 아니라 외향과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선입견과 달리 음악적 취향(청각적 언어)에서 내적인 감정이나 정서적 흐름이 통했다고 한다.

 

이번 ‘2인전’의 경우, 그림이 매우 다른 두 작가가 하나의 공간에서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시각적인 조형언어 너머 비시각적인 음악적 취향이 통한다는 점에서였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선과 형과 색으로 소통하지만, 음악은 보이지 않는 소리의 흐름으로 소통한다. 그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이 음악으로 통하는 이 지점, 두 작가의 시지각의 창작방식은 다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감성을 음악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기획의 입장에서 이 점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유는 창작도 감상도 이성적 논리와 직관적 감각의 상호작용이라는 신선한 자극과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고, 그것은 서로 다른 제3의 시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다양한 시·지각적 감각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세진, untitled, oil on linen, 91x117cm, 2026
박세진, untitled, oil on linen, 91x117cm, 2026

두 작가는 말보다 음을 통해 감각적 소통이 가능한 지점에서 정서적 연대감을 가진다. 확실히 이번 전시는 작가 간의 서로 다른 감성을 품은 제3의 시·지각적 감각과도 통하는 시간이다.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음악이 리듬을 통해 즐기듯이 ‘색빛잔상·검은고요’는 색과 형을 통한 시·지각적 감성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적 예술적 경험을 통한 감각의 균형감, 시각적 의미망의 차이 속에서 ‘정중동’을 가로지르는 감성의 교차일 것이다.

두 작가의 그림 스타일과 성격이 다르더라도 음악적 취향이 같다는 것은 청각적 감성, 즉 음악을 통한 감성적 코드의 일치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성격)이나 표현 방식(그림)은 다르지만 심적 위로와 전율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가 자리한다. 그림은 형과 색이라는 시각적 구체성을 보이는 반면에 청각적인 음악의 경우는 시각적인 입장에서는 매우 추상적인 예술이다. 이런 점에서 시각이미지를 직업으로 하는 두 사람이 청각적 리듬으로 보다 공감대를 발휘하고 있음을 본다.

 

배주은의 이번 전시작인 <0의 조각>과 <무제>시리즈의 작품 중 연필(8B)로 수천수만번 반복한 행위의 리듬으로 선의 겹이 면이 된 ‘검은고요’다. 이 고요는 하얀 종이에 새긴 검은 고요 속 반복과 몰입의 흔적이 반사된 빛, 바로 깊은 고독이 품은 행위일 것이다. 이 연필선이 이룬 행위의 반복인 ‘검은고요’는 순간과 영원의 만남이자 깊은 고요와 정적의 시간이다.

배주은, 무제, 종이에 연필, 70x70cm, 2026
배주은, 무제, 종이에 연필, 70x70cm, 2026

박세진의 ‘색빛잔상은 ‘검은고요’라는 실존의 그림자 사이 ‘색빛잔상’으로 온기를 불어넣는다. 마치 ‘검은고요’에 색 빛이 머물 때, 고요가 더 깊어지듯, ‘색빛잔상’ 또한 검은 고요의 빛이다. ‘검은고요’와 ‘색빛잔상’은 서로를 채우며 저마다의 빛을 발한다. 이렇듯 찰나와 영원이 교차하는 정중동의 장, ‘색빛잔상과 검은고요’가 흐르는 백색공간은 시·지각의 장일 것이다.

 

이번 2인 전의 경우 전시기획도 작가도 개인이나 단체전에 비해 예민한 부분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박세진과 배주은의 전시는 청각적 리듬감이 통하듯,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하얀 백색 전시공간에 생명을 부여한다.

전시전경 2026
전시전경 2026
전시전경 2026
박세진, 전시전경 2026
배주은, 0의 조각, 종이에 연필, 50x50cm(x2),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