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SPRING

봄 SPRING

김건예 김미련 최영

2023. 3. 7 – 3. 19

아트스페이스펄의 이번 전시는 개구리도 잠에서 깬다는 절기상 경첩에 몸과 마음도 녹이는 ‘봄’을 주제로 전시를 열어 놓는다. 추운겨울을 지나면 당연히 봄이 온다. 그리도 당연하게 여겼던 올해의 봄이 특별한 것은 늘 있던 것이 변하거나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되새기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봄은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는 계절이다. 얼었던 땅을 뚫어내는 파란 싹의 생명력처럼, 힘든 나날들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창작의 열정은 봄의 새싹과 같다. 그래서 이 봄의 아롱거리는 빛 속에서 창작의 열정이 담긴 전시로 마음의 빛을 밝히고자 ‘봄’전을 연다.

최첨단 과학의 시대가 남긴 깊은 우울과 반성 속에서 감각의 회복을 위한 ‘봄’전은 작가들이 자각한 저마다의 봄이 담겨있다. 전시에 참여하는 세 명의 작가들의 작품에는 코로나 팬데믹의 그림자 속에서 무수한 힘들로 켜켜이 쌓인 모호한 현실을 깎고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린 작품들이다. 이 창작의 과정에서 투영된 심리적 불안은 촉각적인 방식을 통해 밝은 미래에 대한 회의와 희망이 겹쳐진 물성과 감성이 교차한다. 이처럼 이번전시에 참여한 세 명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의 대결 속에서 생긴 불안 심리들이 사회 현상과 겹쳐질 때, 또렷한 형상이 겹치고 깎여진 물성이 상흔이 되기도 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저용량의 풍경들이 확대되어 흐릿한 풍경이 되거나, 산 능선 따라 검푸른 나무들이 늘어선 풍경 사이로 새파란 하늘과 핑크빛 노을이 물든 초자연의 풍경이 된다.

김미련의 <선거의 피부>는 대통령 선거 홍보를 위해 뿌려졌던 포스터 수 십장이 겹쳐진 두툼한 무게를 갈아서 사라지는 것을 드러내고, 제3의 눈으로 시각적 효과를 통한 이쪽저쪽의 선입견을 벗겨낸다. 이러한 시도가 갖는 의미는 눈으로 보고 감각하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착시와 착각의 방식이 주는 비현실적 괴리감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과 다수의 관계가 가진 적지 않은 양과 무게를 깎아낸 흐릿한 흔적은 현실외면의 박제화다. 이 작업에서 드러나는 것은 눈에 익숙하거나 선명한 형상은 없다. 그러나 그 형상들이 깎이고 깎여 비로소 보이는 것은 창작의 빛 속에서 건져 올린 잔상들이다.

피부의 정치 I_74x52x3cm_혼합재료_2022
피부의 정치 II_74x52x3cm_혼합재료_2022
The Skin of Time_layerd Time__42x29.7x50cm_2022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_41.5x29.4x1cm_리플렛더미를 그라인딩_2022

최영의 <봄의 색>은 자연풍경 속에 남은 앙상한 겨울풍경의 흔적, 그 흐릿한 풍경 위에 그려진 색색의 점과 선과 면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부유하듯 공간적 깊이 속에서 거리감을 유지한다. <봄의 색>은 배경과 형상의 관계를 통해 죽은 듯 살아나 공기와 바람과 햇살로 피어난다. 이는 종이에 프린트된 모노톤의 저용량 이미지를 잉크가 스며든 부분만 남기고 마치 피부의 각질을 벗기듯 지면의 겹을 벗겨냈다. 이로써 흐릿한 이미지표면 위에 선명한 색의 선과 면의 효과로 공간감이 생겨났다. 이 작업은 종이(혹은 한지)프린트 이미지가 겨울과 봄 사이의 시각적 효과를 통해 심미적 공간을 시·촉각적으로 지각한 회화로 핀 봄의 전령이다.

Color of Spring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91×116.8cm _ 2023
Color of Dead glaciers #6.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김건예의 <풍경>은 검은 나무숲이 산 능선이 되어 화면 가득 근경과 원경으로 나누어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 능선은 마치 산불에 타버린 풍경처럼 검은 나무숲으로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 푸른빛이 감도는 나무는 아스라이 희망을 품는다. 김건예의 <풍경>은 자연의 섭리인 생명의 순환인 탄생과 소멸의 시·공간적 의미를 담았다. 봄이 더 찬란하게 아름다운 것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나서다. 이번 전시의 신작인 <풍경> 연작은 검은 숲과 색색의 민둥산 사이에서 깊은 우울도 봄바람이 밀어내고 봄 햇살로 치유하는 모두의 희망 깃든 봄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Landscape_acrylic on canvas_130.3x162.2_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