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nye Kim “Landscape2026”

Geonye Kim “Landscape2026”

김건예 Geonye Kim

산.세.풍.경. Landscape

2026. 5. 29 - 6. 13 / Art Space Purl

김건예의 산‧세‧풍‧경

아트스페이스펄의 이번전시는 근경과 원경의 산(山)을 바라보는 김건예의 산세풍경(山勢風景)이다. 이 풍경은 먼 산과 가까운 식물이 캔버스 위 붓길 따라 자연이 품은 생명처럼 형상너머 시·지각으로 호흡한다. 전시의 주제인 ‘산세풍경’은 동양의 산수화를 결합해 산과 풀만이 아니라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공기와 바람까지 화폭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산은 작가의 작업실 옥상에 올라 매일 바라보는 앞산의 풍경과 옥상에서 자라는 식물도 함께한다.

 

작가의 기법 변화가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산과 풀의 이미지를 통한 산수화기법, 이를테면 동양화의 삼원법(三遠法,Three Distances)이 가진 특징 중에서 ‘심원(深遠,깊고 먼 산)’과 ‘평원(平遠, 평평하고 먼 산)’을 결합한 작업이다. 특히, 산 아래서 올려다보는 시선(高遠, 높고 먼 산)보다는 멀리서 보고 느낀 산등성(붓의 궤적, 능선은 화가의 호흡과 에너지가 실린 붓끝의 강약조절로 산의 기운을 담는 선)에 주목한다. 이 능선은 저 먼 곳 아득한 산과 하늘과 나무와 구름이 붓길 따라 선형상이 되고, 세로와 가로를 잇는 사선은 가깝거나 먼 산의 시선을 담아 자연의 광활함과 평온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김건예, Landscape 130.3X162.2cm Acrylic on Canvas 2025

이번 전시 ‘산세풍경’은 붓 길(Texture Strokes)따라 바위와 산이 되어 섬세한 감성적 울림을 전한다. 이러한 풍경을 위해 명암대신, 붓 결로 난 선과 면으로 산세를 품는다. ‘멀거나 평평한’ 시‧지각적 공간의 결합으로 근경과 원경이 겹쳐지고, 원경의 산풍경이 겹쳐 보이는 경우 마치 흐르는 구름인 듯 흰색효과가 동적공간으로 호흡한다. 이는 동양의 산수화 기법에 대한 작가적 해석일 것이다. 동양화에서 먹의 농담만으로 무한의 깊이를 담아내는 것처럼, 김건예의 ‘산세풍경’은 동양의 산수화를 자신만의 기법으로 재해석했다. 재료도 기법도 시·공간을 표현하는 차이의 결합을 시도한 김건예의 ‘산세풍경’이다.

 

이 ‘산세풍경’에서 ‘산(山)’의 선과 공간의 깊이는 작가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보고 감각한 시·지각의 결 따라 붓 길로 새긴 선이자 면이 되는 풍경이다. “그동안 격자(grid)기법의 작업을 계속해 오면서 격자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지금의 방식으로 하게 되었다.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현재 진행형이지만 동시에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작업에 대해 자문한다. 답을 찾기 위해 나 자신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 지는 변화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인터뷰)

김건예, Landscape 130.3X162.2cm Acrylic on Canvas 2025

2.

이번 전시 ‘산세풍경’을 그릴 때, 표현하는 방식은 산꼭대기 정점에서 밑으로 내려오면서 선이 약해지고 또 그 밑에는 마치 안개가 자욱한 원경의 산을 표현했다. 근경에는 나무나 또는 강아지풀과 다른 풀잎들을 그리고 나면, 그 사이 공간에는 구름, 공기, 바람 등 형태가 규정되지 않은 공간을 그린다. 확실히 기존의 격자기법을 벗어나서 자연의 기세, 가로 붓 터치의 속도감을 통해서 공간의 흐름, 즉 구름이 흐른다거나 바람에 의해서 나무가 흔들린다거나 등등 상상의 공간을 그리고 있다. 근경과 원경의 관계, 산봉우리와 그 아래 구름이 흐르듯,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인 것, 3차원적인 것을 2차원에 표현하기 위한 선적인 요소를 강조한 부분에선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화기법이 겹친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건예의 이번 ‘산‧세‧풍‧경’은 산봉우리를 둘러싼 공간이 마치 하얀 구름인 듯 보이고, 캔버스 전체 풍경을 평 붓으로 감싸듯 전면회화가 된다. 화폭은 붓이 낸 길 따라 구름도 하늘도 흐른다. 이번 김건예 전시작의 가장 큰 변화는 근경과 원경과의 공간적 거리와 산봉우리 사이 공간을 공기인 듯 바람인 듯, 또 구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공간성을 붓이 가로지르는 터치의 흐름을 따라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이점은 동서양의 특징이 결합된 선적인 요소나 산수풍경이 교차하는 김건예 회화의 독창성이다.

김건예, Landscape Acrylic on Canvas 91.0X116.8cm 2026
김건예, Landscape Acrylic on Canvas 72.7X90.9cm 2025

겸제 정선(鄭敾,1676-1759)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몇 년 전부터 정선관련 책을 보면서 그간에 서양화를 통해 산을 보고 그렸던 자신이 동양인으로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 한국의 산을 보면서 서양의 시각으로 보고 그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의 나 자신이 매일 보는 대구의 앞산이 새롭게 보였다.”는 체험은 번개처럼 스친 자각을 통해 가까운 앞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동양적인 요소를 그간의 나의 그림과 결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이에 대한 자문을 통해 그 답을 찾고자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음을 밝힌다. “다양한 시도를 했다가 그중에 살아남아 이번에 전시하게 된 그림(landscape,130.3×162.2cm)이 다른 작업으로 연결할 수 있어 이번 전시로 이어졌다. 장기간 인물 중심으로 그리다가 산을 그리기 시작한 건 몇 년 전부터였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격자에 갇힌 인물을 벗어나 새롭게 호흡하고 싶어서 택한 것 같다. 힘든 시간을 거치면서 옥상에 올라가 앞산을 보다가 그 산이 마음속으로 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전시되는 산 그림은 답답한 마음에 숨길을 열어 준 계기였다.”(인터뷰)

 

산을 바라보는 나와 산을 바라보는 풀, 그리고 가깝거나 먼 거리감을 하나의 캔버스에 연결하고 싶은 마음결과 붓 결이 만난 그림이다. 멀리서 보이는 산은 작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압도적인 존재감속에 온갖 생명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한없이 나약한 자신을 투영한 강아지풀을 보면서 작지만 가장 크게 그렸다. “풀은 나 자신인 거죠. 그냥 지나쳐도 관심 밖에 있는 생명”인 강아지풀에 자신을 투영한다. 비루한 인간의 삶, 피고 지고 사라져 이듬해 또 피고 지는 무수히 반복되는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무겁게 경험한 시간 속에서 그린 김건예의 ‘산·세·풍·경’이다.

김건예, Landscape Acrylic on Canvas 72.7X90.9cm 2025

3.

 

“30년간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숙연해 지는 시간을 가졌다. 몇 년 전부터는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또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매일매일 마음을 다스리며 작업했다. 이번 전시작은 그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그림들이다. 인생이 쉽게 끝나는 게 아니듯, 살아있는 동안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단단한 마디로 성장이 가능하다.”(인터뷰) 격자기법으로 매끈하게 도시적인 인물화를 그렸던 때는 차가웠다면, 자연 풍경을 그리는 지금은 따뜻해진 느낌이라고 한다. 제3의 눈으로 봤던 것이 더 가까워져 정서적으로도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멀거나 가까운 공간적인 감각작용으로 숨 쉬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번 전시작이 붓 결 담은 마음결, 바로 ‘산·세·풍·경’인 이유다.

 

“산과 하늘, 구름과 나무 그리고 풀들을 보면서 그 관계 안에서 숨 쉬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 사이사이에서 꿈을 꾸고 날아갈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공간, 계절 따라 흐르는 변화를 담았다. 3층 작업실 옥상에 올라가면 앞산이 보인다. 5년을 거의 매일 잠들지 못하는 밤에도 새벽에도 옥상에서 산을 본다. 같은 곳에 있지만 날마다 계절마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다. 그러나 지난해 옥상에서 본 앞산 풍경을 마치 거대한 영상 필름이 빠르게 돌아가듯, 눈앞의 광경을 보면서 3-40분 동안 퍼 붓는 폭우를 맞으며 느낀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온몸으로 실감한 당시의 경험은 중요한 터닝포인터였다. 어느 날 하루 날씨의 변화가 주는 인식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처럼, 인간의 감각은 몸과 외부환경이 만나 표면(피부)에서 발생하는 진동(촉각적 시선)을 통해 변화를 경험한다. 그림이 ‘개별적 경험과 사유의 시각화’라고 한다면, 폭우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사건(event)의 시각화가 바로 이번전시 김건예의 ‘산·세·풍·경’일 것이다.

평론Art Critic : 김옥렬 Okreal Kim

전시전경 Exhibition view, ©artspacepurl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