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현 개인전 – Funny Place

2012.5.12sat ~ 6.1tue
이도현

이도현의 회화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경험했던 잠재된 의식과 하나의 경험이 만나서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시각적 울림이다. 이러한 시각적 울림에는 기억의 장소인 몸을 경계로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나와 타인이 조우하는 그만의 감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 깊고 비밀스러운 감성은 현재 진행되는 삶의 편린들이 잠재된 기억의 조각들과 결합되는 지점에서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눈앞에 그려지는 제3의 세계, 그것은 감성의 결들이 붓을 타고 흐르듯 침묵하던 하얀 표면에서 판도라 상자가 열리 듯 아득한 저편에서 억압되어 있던 욕망이다.

단단히 잠겨있던 문을 여는 순간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동화처럼, 이도현의 그림에는 기억의 장소 너머에 있을 상상의 세계, 어쩌면 지우고 싶거나 이미 버려진 욕망의 바다를 항해한다. 이렇게 작가의 상상과 욕망의 바다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통로이자 알레고리(Allegory)를 해석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것은 경계를 사색하는 구조인 진실과 거짓, 꿈과 현실, 감성과 이성, 안과 밖처럼 잠재의식과 현실감각이 만나 하나로 결합되거나 겹쳐지면서 펼쳐지는 시공간을 탐험하는 세계다. 이렇듯 잠재된 의식을 열고 현실의 감각을 결합해 나가는 이도현의 회화는 몇 가지의 변화과정을 거쳐 지금의 작업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최근 3~4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2009년까지의 작업이 문을 통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공간의 경계를 설정하는 형태를 띠었고, 이러한 작품에서는 색을 통해 공간과 심리적 변화를 유추해 내는 것이었다. “색을 통해 심리적인 긴장감을 끌어내는 작업은 공간에 대한 계산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극적인 공간이 연출됩니다. 여러 가지의 색을 배제한 검은색 드로잉의 경우는 내용의 깊이에 몰입할 수 있어 보다 나 자신에 가까운 작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색을 통해 심리적인 공간을 만들어 보았고, 또 검은색 드로잉으로 심리적인 변화를 다양하게 끌어내는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었기에 이제는 색을 사용해도 색이 주는 긴장감과 내면의 깊이를 결합해낼 수 있어 두 가지의 장점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상하이 M50 레지던시에 입주한 이후로는 색을 사용하는 방법적인 변화보다는 사물을 보는 시각적인 면에서 보다 많은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전의 작업이 문을 통해 경계를 표현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방식의 심리적 경계를 확장해 가고 있는 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각적인 변화가 보다 풍부해졌다. 이러한 부분을 작가 스스로는 “이전에는 소통이 분명한 작업을 하다가 중국에서는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것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열어둘 수 있는 장치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환경의 변화도 있어서였지만, 중국에서는 설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내면에 잠재된 의식과 현실을 바라보는 관계 속에서 풍부한 방법적 요소가 필요했고, 그러한 시도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전시에는 한정된 색이나 방법에 구애되지 않고도 집중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다보니까 나와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으며, 힘든 생활이지만 창작에만 집중하는 지금의 시간들이 작가로서 보다 성숙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일본 영화인 ‘산책’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제작한 (진실의 눈 True eyes),(종이위에 목탄과 아크릴, 2011년)은 영화 속의 캐릭터가 가진 관계를 통해 인간내면에 내재된 폭력을 그의 회화적 언어를 통해 보여준다. 이런 회화적 언어는 영화의 장면과 잠재된 의식의 편린들이 어떤 억압된 욕망과 겹치는 부분을 마치 마술사가 장막을 열어 실체를 보여주듯 감각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 억압의 실체를 포착한다. 소녀의 억압된 감성이 파란하늘에 하얀 갈매기가 있는 그램 책을 보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공간은 실체가 가려진 세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그것은 진실을 가린 장막으로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경계일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에 나타나는 붉은색의 원형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설명한다. “원형의 붉은 색은 꿈을 꾸면서 꿈인지를 아는 자각몽을 나타내는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안식의 장소이자 땅과 하늘의 경계인 은밀한 내면 혹은 생명의 장소인 그루터기 안에는 여성의 몸에서 꽃이 피고 대지에 뿌리내린 식물과 연결되면서 자연과 인간이 서로 순환하는 고리로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이도현의 그림에는 욕망의 경계를 통해 가장 순수한 공간, 근원적 모태를 상징하는 알레고리에 대한 작가적 시선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작 중의 하나인 (funny)(캔버스 위에 아크릴,2012)는 프레임과 프레임 너머의 형상과 그 너머에 있는 붉게 물든 몽환적인 세계가 시각적 깊이 안에서 하나로 겹쳐지고 있다. 이 상이한 공간적 깊이는 감상이 서 있는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 즉 잠재된 의식을 불러내는 상상을 확장해 가는 구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실체와 가상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세계가 일상이 되고 있는 시대에 이 작가의 질문은 어쩌면 미술이 당면한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미지 복제시대가 일상이 되어있는 현실에서 미술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자문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도현의 이번 전시작 중의 하나인 (funny)는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가 목마를 타고 있는 그림이다. 목마를 탄 사춘기의 소녀, 어린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 어떤 경계의 지대에 놓인 시기, 어쩌면 이러한 시기는 성장과정 만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몇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는 어떤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 경계에서 사색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 여기(Being here)’는 어떤 경계인가, 혹은 경계의 안(Inside)인가 아니라면 밖(Outside)인가. 미술이 가진 태생적 한계나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진화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미술가의 상상력으로 삶의 경계를 확장해 가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미술이 삶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보다는 더욱 구체적으로 미술이 삶에 깊이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삶과 미술의 경계가 사라진다면 미술이 진화하는 결과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이런 수많은 질문에서 미술이 세속적이던지 철학적이거나 간에 필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라면, 미술을 통해 삶이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기대 역시 가능할 것이다.

이도현은 미술대학 졸업 후 10년간 생활고를 해결해 가면서 작업을 했었다. 지금은 일명 전업 작가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창작활동에만 몰입하고 있다. 이런 몰입의 결과인지 확신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회화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말한다. “내 작업은 사소한 에피소드나 대화도 기억 속에 저장해서 다른 기억이나 경험들과 결합해내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단편들 그리고 현재의 시간과 장소에서 경험하는 일상뿐 아니라, 타민족과 타인의 삶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심리적인 상황들로 조합하고 다시 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을 통찰해 가는 이도현의 작업은 무의식에 잠재된 억압된 욕망을 공론의 장소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의 편린과 현실적 경험과의 결합에서 드러나는 색과 형상에 담긴 알레고리는 하나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이야기로 확장되는 열린 문으로 작용한다. 아마도 그것은 기억의 편린이 충돌과 화합의 과정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이도현의 내적울림일 것이다. 그래서 이도현은 “나는 내 작업 앞에서 소통을 시도해 보고자 한번쯤 발을 멈추는 정도까지 하고 싶습니다. 정답이 있는 읽히는 작업보다는 발을 멈추고 소통을 시도하는 매력적인 작업,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끌리는 것에 다른 사람도 끌리게 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처럼 작가의 욕구만큼이나 초대하는 입장에서도 기대가 커진다. 중국에 가기전보다 훨씬 풍부하고 매력적인 작업을 하고 있기에 기대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전 작업과 중국에서의 작업을 거쳐 보다 발전된 작업을 보여주려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모습을 본다.

이렇게 이도현은 자신의 그림 앞에 멈추어 서서 소통을 시도하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창작을 위해집중력을 발휘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창작에 대한 이 같은 집중력은 잠재된 의식을 바라보기 위해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끌어내는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이도현의 그림에 담긴 의미가 무의식에 잠재된 욕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퍼 올린 근원적 본질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이란, 스스로지고 가야하는 현실의 무게와 심리적 경험의 변화를 미묘한 회화적 언어로 풀어내면서 잠재된 욕망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감성의 울림에 반응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욕망의 근원으로 통하는 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해가는 이도현의 회화는 심리적인 알레고리이고 삶의 여정이 담긴 사색의 결과일 것이다.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아트스페이스펄대표)